제주조릿대는 과거 힘들었던 시절 제주사람들의 ‘비상식량’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제주에 계속되는 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했지만 육지에서 곡식이 제주까지 운반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한라산에서 조릿대의 열매로 끼니를 대신했다. 그 생긴 모양이 밀과 같아 맛은 달고 담백하니 백성들이 많이 따다가 음식을
과거 제주 말 방목은 고려 충렬왕 2년(1276년)에 원(元)이 제주에 말을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지역의 기후 특성을 보면 목초의 생산은 봄과 여름에 가능하여 방목기인 4월과 10월 사이에는 초식 가축 방목이 원만했다.그러나 목초 생산이 중단되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목초가 부족하여 상록성인 제주조릿대를 말의 먹이를 사용했다
한라산에 분포하는 식물은 지리적 위치와 지형적 특수성 등으로 인해 대륙으로부터 남하한 식물, 중국과 일본을 걸쳐 공통으로 분포하는 식물, 열대나 아열대 기원이 식물, 제주도에서 분화한 식물 등 다양한 요소를 지닌 식물들이 구성되어 “한반도의 식물 보물단지”라고 불린다.이들은 제주도 해안부터 한라산 정상까지 해발고도에 따라 환경구배가 이
한라산이 조릿대의 ‘반란’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 변화에다 말 방목 등 ‘천적’이 사라지면서 제주조릿대는 세력을 계속 확장, 한라산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다른 식생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이 ‘조릿대 공원’이 되면 국립공원에서 제외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