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노트북>,<파 프롬 어웨이>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서 착잡해지곤 했다.
한때 그토록 찬란하던 영육, 그 이면에 차마 인정하기 싫은 버그상태, 이 극단적 대비의 무거움 때문이리라.
그러던 차 인지신경과학, 치매 분야의 전문가 나덕렬 박사님의 <뇌미인> 강의를 들었다. 열 살부터 여든까지 외양에만 쏠린 우리에게 뇌 가꾸기, 즉 내면 가꾸기를 힘 주어 강조했었다. 그 중에 인상적인 것은 키워드는 바로 “예쁜 치매, 미운 치매”라는 용어였다. 뇌의 포장이 스르르 풀려 제어되던 것들이 다 쏟아져 나와 엎질러진 쓰레기통 같이 속수무책 지경인 치매… 미움, 원망, 불안, 놀람 등등 살면서 자주 쓰던 감정의 관장 신경망이 두꺼워진 채 최종까지 남게 되면서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고약한 막간인 이 단계에서 와르르 들통이 나고 마는 노릇. 우리 먹은 마음이 이토록 자명하게 신체와도 직결되어 있음에 대한 새로운 경각이었다.

거치지 않으면 좋을 일이지만 혹시라도 걸린다면 덜 밉게 지나가는 비결이 있다. 그건 바로 <감사>와 <긍정>등 향기로운 내용물로 신경망을 키우는 거다. 그나마 의식 명료할 때 무엇을 담아야 할지 어느 정도 보완책이 선택 가능한 셈이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얻은 가치 중에 가장 묵직한 금언이라면 새옹지마塞翁之馬, 바로 이 긍정의 힘이다. 원치 않은 일조차도 내 삶에 필요한 메시지로 수긍하는 일, <긍정>은 <감사>와 이란성 쌍둥이며 <희망>의 자매다. 영어 낱말 중에 Thank에 종종 대체되는 appreciation이라는 말이 있다. <감사하다>외에도 예술작품, 풍경 등을 <감상하다>, <진가를 알아보다> <감탄하다>에도 두루 쓰이는 표현이다. 감사라는 건 진심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깊이 감상하는 거랑 같은 뿌리였음을 새로 알았다.

덕이 메마른 세월에 덕을 가일층 높이 부르짖듯, 요즘 자주 맘 머무는 곳은 기쁨, 감사, 희망…. 이러한 비가시적 가치다. 내면 살림살이를 늘리는 가장 큰 비결은 매사 새로이 경탄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허리 굽혀 가꾸지 않아도 몸을 바꿔 피는 들꽃들의 어여쁨, 길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들의 순한 호의, 내게 주어진 것들에 無心코 가 아닌 有心하게 오감을 동원해 진하게 음미하는 일이다. 음미에서 의미도 생기고 감사, 긍정, 넉넉함, 나아가 나눔도 생긴다. 감사도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

지난 봄에 나는 손녀를 보았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스스로 세속한 가치관을 지니기 전에 순백의 가슴에다 깊이 새겨주고 싶은 딱 한마디를 고르란다면 주저 없이 이 <긍정>이라는 가치를 집어 들겠다. 과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슴에 새겨진 이 금언이 제구실을 하게 되리라…
사랑하는 일이 무언가, 그이의 존재를 귀담아듣고 눈 여겨 보는 것, 그리고 제 마음을 얹어 극진해 지는 것...
그때야 비로소 사랑하는 이들만이 들을 수 있는 세미한 우주의 음성도 들릴 것이야...
무어든 찐하게 느껴보아라, 그리고 그 가치를 가슴에 품었다가 세상을 향해 넉넉하여져라.
내일 지구가 끝장 난대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비장하게 나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이 팍팍한 긍정가난의 세상, 단 한 생명의 가슴에나마 긍정의 씨를 심어 공들이는 일, 이게 내 남은 일이겠다.

이재향((주)리엔리웍샵대표.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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