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자(세이레 어린이극장 대표)
▲ 정민자(세이레 어린이극장 대표)

 지난 9월 3일, 간만에 남편이랑 영화 보러 갔었다. 문화기획PAN(대표 고영림)이 매월 첫 번째 화요일마다 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 '제주씨네클럽' 행사를 여는데 주한프랑스문화원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제주씨네클럽은 예술적으로 호평받은 작품을 선정해 무료 상영한 후 관객과 함께하는 씨네토크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그동안 몇 번의 초대에도 가지 못하다가 드디어 참석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영화가 그림자애니메이션이라 어린이극을 만드는 나를 토크강사로 초대해 준 것이었다. 영화는 미셸 오슬로 감독의 '프린스 앤 프린세스'로 몇 년 전,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그림자극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주려고 찾다가 보게 된 영화였다.  단순하고 시적인 구도로 어린이에게는 기쁨을 주면서도 어른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각기 독립적인 여섯 개의 이야기가 전체를 구성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뤄졌다.
 
 미셀 오슬로 감독은 이 영화를 13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하는데, 영화 곳곳에 연극적인 요소와 제작방법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우리에게는 무척 친숙한 내용이었지만, 그림자가 주는 심플함과 빛과 그림자의 완벽한 판타지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날 영화 관람객은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 관람이 강의 대신이었는지, 영화감상문을 쓰는 게 과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객석 전부를 대학생들로 가득 채워졌다. 요즘은 문화공연 현장에 젊은 관객층이 없다고,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는다는 것은 세대 간의 문화 단절이고 문화의 위기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사정이 어떻든 간에 젊은 아이들이 객석을 다 채우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실로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같이 간 남편도 고무적이라며 기뻐했다. 공연장을 찾아다니다보면 그 맛을 알게 되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문화적인 삶은 살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제주씨네클럽이 한 달에 한 번 좋은 영화를 선정하여 무료상연 하겠다는 건, 돈 버는 일도 아니고, 단지 이 땅에 젊은이들이 문화인답게 자라고 문화인답게 살게 해주고 싶은 것일 게다. 게다가 이런 행사를 열일곱 번째나 해 오고 있다니, 그들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단순히 영화관람이 아니고  보고나서 토론까지 진행한다. 제대로 소통해보자는 의도다. 제주씨네클럽 대표의 바람도 젊은이들과 이 시대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싶단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미래는 여가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사실은 여가야말로 인간이 문화적인 삶을 즐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는가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수면, TV 보기 등의 순으로 나온다. 나 또한 그렇다. 하는 일이 연극이다 보니 연극관람은 여가를 즐기는 게 아니라 나의 일이고, 휴일이나 어쩌다 시간이 나면 밀려둔 집안일이나 시장보고 남은 시간은 자거나 TV보는 게 전부다. 영화 보러 가고 책을 읽으며 문화적인 삶을 누리는 경우는 정말 어쩌다 있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이런 문화적인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못 누리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꼭 돈이 있어야 하는 걸까? 주위를 돌아보면 돈이 안 들어도 훌륭하게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만끽할 수 있는 문화적인 행사들은 많다. 
 지금 이 시대는 이런 작은 문화운동들이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문화는 강하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문화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야 하며 문화적인 삶이라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때 문화가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오늘날 문화는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는 적어도 각박한 이 시대에 우리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며 부드럽게 보듬아줄 수 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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