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옥자-수필가
▲ 공옥자-수필가

  환갑을 넘기자, 굳어 가는 몸의 유연성을 기르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데 도움이 되리라 싶어 한 동안 요가를 배웠다. 수련의 시작은 늘 어설프고 힘겹다.
 스승은 동작마다 따라오는 아픔에 절로 얼굴이 굳어지는 제자들의 표정을 보며 말씀하신다.

 “고통을 지그시 즐겨야 합니다.”

그 말에 집중하여 아픔을 의식하자 조금은 견딜 수 있었다.
요가 동작은 숙련까지 끝없는 인내의 시험장이었다.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에도 분명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의식이 있었던가. 아기는 소리쳐 울지만 학자들은, 호흡을 트는 연습이라 해석할 따름, 아가에게 물어 볼 수는 없다. 어미의 단말마 같은 고통을 알 뿐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한 생을 건너는 동안 여러 갈래, 여러 깊이의 아픔을 겪는다. 질병과 사고로 오는 신체적 통증은 물론이고, 욕망의 좌절이나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정신적 고뇌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뿐인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 이르러 까지 고통은 질긴 동반자다. 마침내 숨이 다하여 삶에서 놓여난 사람의 얼굴에 평화가 서릴 때, 보는 사람의 마음에 오는 한줄기 안도는, 생의 피안에는 아픔이 없으리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평화와 자유와 기쁨이 상존하는 세계를 꿈꾸는 희망이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인생이 고해라’ 단정하여 말씀하신 분의 의중을 헤아릴 만하다.

 살면서 부딪는 여러 경험을 혀끝에 느끼는 맛에 견주어 표현한다.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신맛, 오미(五味)라 불리는 맛을 감각으로 고스란히  불러 와서. 기쁨이나 행복,  패배와 절망, 실수나 오해, 시련, 역경 고난을, 은유로 들어낸다.
 사람들은 달콤한 맛을 선호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몸에 좋다면 쓴 나물도 즐겨 먹는다. 봄철 별미인 머우 잎  고들빼기 쑥  민들레 등속은  쓴 맛이 강한 편인데도 좋아 하는 사람이 많다.  쓰고 시고 떫어도 적절히 조리하여 다 먹는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모두 안다. 육체를 위해서 그러하다면 정신을 위해서도 가능 한 일 아닌가.  고통이나 역경이 사람을 도약시키고 개과천선 변모시키기도 한다는 걸 숱하게 보고 듣는다. 그러하니 친구여, 인생에서 겪어야하는 우여 곡절이 삶의 맛이라 음미하며 가자.
 어쩌면 삶 자체가 쓴 맛을 삼켜야만 치유가 가능한 기나긴 질병일지도 모르겠다.

‘통증을 즐기라’는 요가 선생님의 말은 내 의식을 깨웠다. 요가 역시 인내와 훈련이 필수 요건이었다. 시고 짜고 매운, 고난과 신산스러움, 핍절과 실망, 오고 또 오는 삶의 통증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짓눌리는 생의 압박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리라.

  모든 맛은 단지 혀와 목을 통과하는 순간의 느낌뿐인 것을!
 
“그래 이 고통의 쓴 맛도 인생의 맛인 걸, 살아 있어 받는 축복인 거다”

중얼거리자 갑자기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라디오에선 ‘타타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빈손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허허허”

웃는 가수의 목소리가 멀리 메아리쳐 나간다.
 타타타란 여여(如如), ‘그러하다’라는 뜻의 불가에서 사용하는 단어였다.
 한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인 걸, 사는 동한 목을 넘겨야할 고통의 경험들을  기꺼이 삼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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