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밤에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의 깊이처럼 깊어 간다. 여름내 매미가 울던 자리를 귀뚜라미가 꿔어 찾다. 나에게 각인된 가을빛 가을비가 단풍색을 물들이듯 빗소리가 요란하다. 구좌읍 월정리 목장엔 억새꽃이 가을바람에 群舞(군무)를 폈다. 담쟁이는 담이 아닌 나무 위를 기어오르다 힘 버거웠는지 노랗게 변하다 붉은 잎사귀를 내보이는 게 애처롭다. 소나무는 재선충에 여기저기 죽어 말라 비틀어 지고 있다. 큰일이다. 몇십 년 커온 나무요, 우리 산천에 터줏대감인데, 온 숲이 황 벌것다. 그러나 말오즘때 나무, 비목 등 열매가 알알이 벌어지면서 반질반질한 구술 같은 씨앗이 살짝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흑진주 같다. 덩굴 속에 숨겨둔 으름 열매는 누군가 훔쳐갈까 벌어질 때로 벌어져 하얀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보리수(볼래)나무 열매 역시 노랗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앙증맞다. 숲 속에 산새와 벌레들이 만찬을 줄기고 있다. 나도 함 묵 끼어들었다. 으름, 열매는 혓바닥에 닫는 순간 달콤하고 향끊하다. 이렇게 자연은 나와 소통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유년기에 초가지붕을 엮기 위해 띠(세)를 구하기 위해 동네 어른들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허기를 달래며 채취해 올 때는 보리수 열매나, 꾸지뽕 열매 달린 가지를 등짐에 달고 오면 군침이 돌라, 얼른 받아먹기도 했다. 숲길을 걷다 보면 자귀나무가 콩깍지 모양 노랗게 물들고 있다. 큰 나무 밑에는 자금우 백랑금 등 콩알 크기의 빨간 열매가 뚜렸하다. 백랑금은 엄청나게 돈이 많이 달렸다는 뜻이 있기도 하고 자금우는 가을의 아름다운 빛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면서 바쁜 계절임을 예감하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꽃피우고 지우는 봄꽃처럼 산중에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무들이 겨울나기를 대비하는 지혜의 일환이다. 그만큼 인간과 같이 세월이 지남을 예감한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보다 영특한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덧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현상에 감탄뿐이다. 그에 못 미칠까 봐, 가을꽃이 봄꽃처럼 와지자 않아서 고독과 애수를 느끼게 해서 짠한 감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꽃들의 색정이 억새꽃은 붉은 비단처럼 예쁘진 않지만, 가을의 깊이를 잴 수 있고, 연보라색이 함초롬히 여미는 칡꽃은 가을 타는 여인처럼 처량하다. 그래서 가을이다. 그래도 가을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단풍나무와 은행나무인 것 같다. 곱고 예쁘게 노랗게 물드는 은행잎, 붉다 못해 빨갛게 타는 단풍잎, 가을의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대명사다. 한잎 두잎 갈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보고 있노라면, 산의 숲은 우리들의 삶의 고단한 육신과 영혼을 희석해주는 땔려야 땔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살아가는 청량제 역할을 선사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늘 꽃처럼 단풍처럼 곱고 양처럼 순하고 황소처럼 건강한 것이다. 이게 전부 자연이 주는 덕이다. 그런데 왠지 한라산 자락을 쳐다보면 슬픔이 밀려온다. 황폐한 사막처럼 번져가는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인재인지, 자연의 재해인지, 자연을 사랑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환경단체 및 강정동 민 군항 복합기지에서는 천막을 쳐놓고 농성을 하면서 소나무 재선충 구제에 발 벗고 나서는 이가 없어, 아마도 자연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 없이 평화는 없다. 목장길을 걸으면서 필자 혼자 구시렁거린다. 가을은 봄처럼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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