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용 길(행정학박사 · 前언론인)
▲ 이 용 길(행정학박사 · 前언론인)

  ‘얼굴’하면 금세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이 떠오른다.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1950년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왔었기에 쉽게 연상이 되는 듯싶다. ‘어렸을 때부터 먼 산 절벽위의 사람형상과 같은 바위를 바라보면서 그 얼굴을 닮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성장했던 주인공 어니스트가 결국에는 자신이 큰바위 얼굴을 닮게 되었다’는 줄거리의 단편이다. 비록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끊임없는 자기탐구를 통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마침내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여기에 나오는 큰바위 얼굴은 장엄하고 숭고하면서도 자상한 표정을 띠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 얼굴은 미국 작가가 쓴 미국인의 표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배달민족의 얼굴은 어떠할까. 지난달(1월)하순께 한 중앙일간지가 특집으로  제주도 잠녀(潛女)의 얼굴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해녀의 얼굴에 핀 검버섯에서 바다와 바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 ‘할망 해녀’의 얼굴엔 평생을 물질하며 살아온 한 여성의 강함과 약함, 기쁨과 고단함이 뒤섞여 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기나긴 세월, 생(生)과 사(死)를 넘나들며 살아온 그 얼굴에 어찌 깊은 주름이 없고 고난과 시련의 자취가 없을 수 있으랴. 그러나 이 잠수(潛嫂)의 표정에서는 또 다른 모습, 평온함과 성취감이 넘쳐나기도 한다. 바로 우리 할머니·어머니들의 얼굴이다.
  얼굴이라는 낱말은 얼과 굴, 두 글자로 돼있다. ‘얼’이나 ‘굴’은 ‘꼴(形)’의 옛말로서 형체(形體)·형상(形象)의 뜻을 가지고 있다. 형체라는 의미로 ‘낯’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다소 품격이 떨어지는 말이다. 어쨌든 얼굴은 사람 그 자체이다. 사람의 얼굴은 속 일래야 속일수가 없다. 감정이나 느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얼굴은 인품의 표현이자,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행인지 불행인지, 자기의 얼굴을 직접 만들거나 선택할  수가 없다. 얼굴은 절대자인 조물주가 내려주신 것이요, 태어날 때 어머니한테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神)은 한편으로 우리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얼굴을 바꿔줄 수도 있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렇다. 책무를 다해야 한다. 한 인간의 얼굴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낸다. 인생을 착실하게 산 사람은 얼굴에 그 성실의 빛이 풍겨진다. 우아하고 고상한 생각과 행동을 하면 자연스레 아름다운 얼굴이 되게 마련이다. 
  얼굴은 인간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이기도 한다. 세계 70억 인구의 얼굴이 제각각이다. 비록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어딘가 다르다. 사람의 손과 발, 몸통이나 머리모양만 보아서는 그가 누군지를 모른다. 반드시 얼굴을 보아야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신은 이처럼 각자의 특성을 존중하여 얼굴을 상이(相異)하게 조각해놓은 것이다.
  작품 속의 큰바위 얼굴은 웅장하고 위엄이 있는 용모로 그려지고 있다. 성자(聖者)의 얼굴은 거룩하고 자비로울 터이다. 그러면 우리 보통사람들은 어떤 얼굴이 알맞을 것인가. 뭐니 뭐니 해도 부드럽고, 따스하고, 인자한 얼굴이면 흡족하지 않겠는가. 올해는 갑오년 ‘말띠 해’이니, 말처럼 활력에 찬 모습도 좋겠다. 이와 더불어 온화하고 빙그레 웃는 얼굴로 한해를 살아가는 것도 자신과 우리 모두를 위해서 바람직한 삶의 자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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