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선(조형작가)
▲ 변명선(조형작가)

겨울 채비 하는가 싶더니 입춘이다. 제주사람들은 어떻게 지난 계절의 근심을 풀어내고, 고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봄을 마주하였을까. 60년대 이전까지도 제주의 작은 마을들은 걸궁의 신명으로 봄을 시작했다. 흔한 굿도 못하고 살아가는 가난한 마을사람들의 엉킨 정서를 봄의 길목에서 마을의 거리굿을 통해 풀어냈다. 걸궁을 통해 십시일반 모은 곡식으로 마을 포제를 지냈으니 그 정성 또한 하늘에 닿았음이 분명하다.

걸궁은 건립, 궐공 등으로도 불린다. 걸궁은 풍자와 해학이 있는 제주의 연희문화이다. 탈이 많은 마을의 거리는‘개먹은 거리’라 칭했다. 그곳에 작은 제를 올리고 각각의 개먹은 거리마다의 이야기를 극과 춤으로 풀어낸다. 굿에 사용했던 악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장단은 세마치, 네마치장단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다. 연희에 등장인물도 흥미롭다. 사농밧치·덩누기·어부·애기업게·동녕바치·테우리·작부 등 복식을 보고도 제주의 문화의 이채로움으로 절로 흥에 겹다. 주인공들에게 상징적인 커다란 가면이 쓰이는데 시각적으로 대열의 균형을 만들어 낸다. 선두에서 대열의 꼬리까지 마을사람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게 되는 거대한 행렬의 구조를 갖고 있다.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가 어우러지는 장이 되는 것이다. 함께 마을을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진정한 봄의 기원인 것이다.

일만 하던 내 부모의 기억 속, 이 풍류의 가락이 흐르는 것을 안지는 얼마 안 된다. 제주의 전란 속에서도 아픔을 함께했던 걸궁이었다. 하지만 험한 세월에도 이어오던 걸궁은 60년대 이후 획일적인 새마을운동과 근대화로 사라진다. 문화예술의 도시, 제주의 수많은 축제에 걸궁의 빛은 사라지고 일반화된 풍물만 화려하다. 축제무대마다 화려한 차림과 장단으로 일반화된 민속의 정형만을 보였다. 마을마다 소박한 이야기를 담은 제주의 걸궁은 사라지고 축제는 감미료가 들어간 무대처럼 어디나 같은 모양새로 행렬만 있다. 근래 들어 걸궁의 흔적들을 찾는다. 지난해 서귀포문화사업회와 정방동청년회에서 걸궁 재현 시도가 있었다. 탐라문화제에서도 걸궁대회가 있었다. 이 마을 저 마을 할 것 없이 걸궁 재현의 어려움은 동일하다.

걸궁의 핵심 정신은 무엇인가. 역사적인 자료 정리와 마을마다의 특징을 구술 자료로 담아내고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할 때이다. 축제무대나 화려한 상가에서 헤매는 걸궁을 잠깐 멈춰라. 그리고 걸궁의 정신은 무엇인지 이것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너무도 변해있다. 이런 삶의 모습으로 어찌 핵심적인 걸궁의 정신과 오늘의 시대정신을 담아내야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
봄이 온다고 하는데 설렘이 없는 것이 요즘의 삶이다. 지쳐있는 제주사람들에게 전통의 뿌리를 가진 제대로 된 신명을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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