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시인.前 초등학교 교장)
▲ 김광수(시인.前 초등학교 교장)


 땅을 밟았다. 흙들이 눌렸다. 걸었다. 눌렸던 흙들이 일어섰다. 계속 걸었다. 눌렸다 일어 섰다를 반복하였다. 땅이 탄탄했다가 부드러웠다. 주름지지 않은 얼굴과 주름진 얼굴이 생각났다. 굳은 의지와 옳은 판단으로 길을 잘 가는 사람과 의지 부족과 판단미숙과 여러 가지 결함으로 가는 길에 혼선이 빚어 제 갈 길을 제대로 못 가는 사람의 경우도 연상 되었다. 내가 평탄한 길과 그렇지 못한 길을 걸어온 내력을 이 땅에다 새겨 넣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마음이 평탄하고 그렇지 않게도 하였다. 살아 숨 쉬며 내 정신에 까지도 이렇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흙, 세상이 격려하였다. 경륜을 펴라 하였다. 영광 있으라, 그 때 꽃다발 안겨 주리라 하였다.
 그 엄동설한에 나는 집안에서도 추웠다. 유리창 문이 차서 그런지 실내 공기가 쌀쌀하였다. 외풍이 있는 것 같았다. 옷을 두 겹 세 겹 껴입었다. 소문에 들어 뽁뽁이를 사다 유리창에 붙였다. 확실히 실내 공기가 덜 찬 것 같았다. 창 밖 땅을 바라보았다. 나처럼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살아가는 땅, 매화나무 감나무 귤나무 무화과나무 황칠나무 장미 허브 블루베리 배추 무 잡초 등을 품고 살아가는 그 땅을. 깊은 골짜기도 생각하였다. 긴 세월 함께 하며 비바람에 파이거나 깎이어 골짝을 이룬 것. 사람이 살며 노력한 경륜의 훈장인지 주름살 같은 것. 인생의 총 결산이라 할까 그런 것.
 봄이 될 임은 행복을 찾아 벌판에 섰다. 아직 거칠게 부는 바람 많이 남아 힘들다. 내려치는 눈보라도. 하지만 괴롭다 말 못한다. 인내함이다. 고난 이겨내는 법을 다 쓴다. 하늘 밑 현상이 변화무쌍함을 감지하여 행동한다.
 우렁찬 목소리로 앞길을 열 설계를 밝힌다. 결심을 굳힌다. 실천을 위한 일들 무루 키워 나간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보인다. 봄을 찾아 나서려는 내 마음을 움직이게도 한다.
 땅이어 삶을 존경한다. 순풍의 날들을 보내기 바란다. 새 봄을 향해 가는데 걸림돌이 없길 바란다. 몸살하지 않길. 두통과 복통이 없길. 깜깜한 눈앞이 아니길. 그래서 행복하다는 모습만 보이길. 추위 풀려 봄이 되면 밖에 나가 보상 받겠다던 그 마음은 훌훌 털어버리고 마냥 좋아하길.
 누구도 걷지 않아 발자국 없는 새 봄길. 걸어가다 앉아 보고 뛰어도 보고 날아도 보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새 봄을 맞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길. 아등바등 너무 일에 집착하지 말자는 말, 즐겁게 여행을 많이 다니자는 말, 많이 격려해 주며 살자는 말, 소원성취 하길.
 제주 바다 파도 또한 새 봄을 위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얀 모래밭에 철썩거리며 새 봄이 왔다는 소식 전한다. 입춘 무렵에 전했던 여기저기 꽃소식, 한림공원에 수선화 매화 꽃 피었다는 소식 듣기 반가웠다. 우리 집에도 개나리 매화꽃 일찍 나와 추위 탄 모습이다. 그뿐인가. 한라산 아래 여기저기, 성산 일출봉 앞 바닷가에도 노란 물결 유채꽃이 출렁인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 같다.
 유채꽃 속의 질서가 평화롭다. 저 사람들 속에 더러는 천생연분 깊은 인연 닿아 인생사에 결정적 획을 긋는 순간을 보인다.
 아름다운 자연은 사람을 인성 좋게 심성을 갈고 닦아 준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해녀들 숨비소리는 봄을 부르는 소리, 사람을 착하게 하는 소리, 정답게 다가오는 맑은 봄 소리, 심호흡도 상쾌한 봄을 맞는 소리, 인간과 자연이 손잡고 기분 좋게 하늘을 날아가는 소리.
 봄을 맞는 임은 영광을 바라보며 고통을 겼었다. 이제 큰 보람을 얻게 되었다. 봄! 호주머니에 오래 넣어두고 싶을 따뜻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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