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행정학박사.전언론인)
▲ 이용길(행정학박사.전언론인)

  욕은 남을 저주하는 말이다. 남을 미워하는 말, 남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이다. 욕설(辱說)·욕질·욕지거리라고도 한다. 단순히 욕이라고 할 때에는 불명예스런 일이나 곤란한 일, 수고로운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쨌든 욕은 흉하고 상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욕이 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욕쟁이 할머니’가 하는 욕은, 어감이 전혀 다르다. 풍자가 있고 해학이 있다. 구수한 입담에 걸쭉한 육두문자라도 섞어놓을라 치면, 인정이 묻어나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심지어는 욕을 미화하는 ‘욕(쟁이)대회’도 있다. 이렇듯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욕은, 긴장을 해소하고 부아를 삭여준다. 우리들의 메마른 일상(日常)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욕은 욕일 따름이다. 욕은 대부분 호의적일 수가 없기 까닭에, 우리 주변을 삭막하게 하고 황폐하게 만든다. 욕과 비슷한 험담·악담·비난·모욕 등도 피해를 주기는 마찬가지다. 험담은 남을 헐뜯는 말이고, 악담은 남이 잘되지 못하도록 저주하는 말이다.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는 것이고, 모욕은 상대를 깔보고 뭉개는 짓거리다. 이것이 다 남을 대상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욕에 관한 책을 쓴 고(故)김열규 교수는 욕을 쌍욕·저주욕·악담욕·채찍욕·조롱 조소욕·농담욕·익살욕 등으로 분류하였다. 욕은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어서, 우리의 다양한 정서만큼이나 유형도 가지가지다. 그 중에는 음담패설과 같은 성(性)관련 욕이 가장 흔하고, 여성·남성을 비하하는 욕, 배설물과 연관된 욕이 그 뒤를 잇는다. 동물과 관계되는 욕도 난무한다. 특히 동물 가운데는 개가 많이 등장한다. 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욕에는 으레 ‘개’자가 들어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욕은 왜 하게 되는가. 무슨 고상하거나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주 간단하다. ‘욕먹을 짓을 하니까, 욕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유를 대라면 몇 가지 덧붙일 수는 있다. 즉, 욕이란 억눌린 마음을 풀려는 욕구분출이요, 감정의 발산이다.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평과 불만을 배출하는 것이요, 자신의 느낌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화풀이로 기분을 전환할 수도 있고, 몸싸움을 할 때에는 상대방을 제압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밉고 꼴 보기 싫은 것이 하도 많아서 저절로 내뱉게 되는 것 또한 욕이다. 이처럼 욕은 의도했던 안했던,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착한일, 좋은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는 경우이다. 비록 욕이 수긍이 가는 일면도 있다고는 하나, 남의 가슴에 못을 박고 생채기를 내는 것은 사실이다. 욕은 이리해도 저리해도 타인을 속상하게하고, 언짢게 하는 것이다.
  욕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유쾌한 일이지만 ‘욕쟁이 예수’라는 책마저 출판된 것을 보면, 욕을 아주 없애지는 못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욕을 듣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은 채로 눌러있어야만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욕을 받지 않거나 반사(反射)시키면 된다. 주는 선물을 사양해서 안 받으면 본(本)주인한테 도로 가게 돼있듯이, 욕도 받지 않으면 욕질을 한 당사자에게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굳이 다툴 필요가 없다. 침묵으로 가라앉히거나 되돌려 줘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욕에 관한 명언이 있다.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아픔을 준다. 욕을 먹는 사람, 욕을 전하는 사람, 그러나 제일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설을 한 바로 그 자신이다.’ 두고두고 조심할 일이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