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선(조형작가)
▲ 변명선(조형작가)

 

제주의 마을사람들은 서로 가지고 있는 재능을 잘 안다. 바느질 한다는 괸당(친척)은 상복을 마름질하고 손 빠르고 음식 잘하는 여인들은 먹거리를 장만한다. 멀리서 온 괸당도 잘 기억하여 안내하는 ‘청객’이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하고 총감독 한다. 세기를 넘어 아픈 질곡의 역사를 겪어온 제주의 사람들은 좁은 지역이라는 특성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묵묵히 만지며 산다. 함께 아파하며 나누던 따뜻한 국물이 꽃피는 봄 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제주의 4월이다.

서귀포 산남지역의 상가집에는 요즘도 국수로 음식을 대접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멸치국수로 대신 하지만 예전엔 돗(돼지)과 뼈를 함께 넣어 달인 국물에 국수를 말았다. 도새기 석 점 수애(메밀순대) 한 점 놓은 접시와 김치가 덩그란히 전부였다. 그저 배고픔을 잊을 정도로 이웃들은 요기했다. 고단함을 골고루 나누는 소박한 음식, 그 속에는 큰일 치루는 이들을 위한 이웃들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요기했던 고깃반과 고기국수에 제주이웃들의 배려심을 읽게된다.
혼례나 상례, 큰일이 없으면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이 하나가 더 있다. 며칠간의 노고에 위로하며 함께 끓이던 ‘몸국’이다. 달인 돗국물에 몸(모자반),솜키(푸른채소)를 넣고 메밀가루를 듬뿍 풀어 끓인 걸죽한 몸국, 배지근한 제주 국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큰일 말미에는 도새기 창자에 잔반과 야채, 메밀 등 제주의 식재료를 다져넣어 순대을 만든다. 모두 빠짐없이 나누기 위한 음식 제주도 순대 ‘수애’다.

큰 일 도우러 온 어미 때문에 밥 때를 놓쳤을까 하르방 것도 아이 것도 ‘고깃반’에 ‘수애’ 몇점 싸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나누는 음식의 정성으로 큰일은 일상처럼 뚝딱 지나갔다. 제주의 문화는 속속들이 민주적이다. 그러한 음식문화의 구조는 주인장 성품에 관계없이 그렇게 먹고 이렇게 나누는 ‘사회적 장치’가 되었다. 음식하나 속에 약자를 배려하고, 빠짐없이 나누는 ‘제주정신’이 있었다.

달고 기름진 양념, 음식에 뭔지 모를 허기를 느끼는 요즘의 도시인들. 의식을 치르듯 제주를 찾는다. 제주의 음식을 찾는다. 거친 음식의 대명사 제주의 콩섶(콩잎)을 찾는다. 블랙 푸드, 참살이, 로컬푸드..사람들의 관심을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좋은 먹거리란 혀로 전해오는 맛뿐만 아니라 그것의 절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먹거리로 세상을 살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확장이다. 이제 우리는 음식 한 그릇에 들어있는 먹거리로 죽어가는 이 땅을 함께 살리고 음식하나에 담겨있는 제주의 정신을 일깨우는 감동의 제주를 만들고자한다.

국그릇 안에 얼굴을 파묻고 갈치국 한 그릇 땀 흘리며 먹었던 기억이 솔쏠하다. 이렇게 소박하게 담아서 빠짐없이 나누는 ‘반’처럼 이 땅의 사람들의 그 삶을 담아낸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고기반 한 점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가. 동백이 지는 4월, 남은 잔반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다시 나누고 배려했던 우리의 ‘반’정신을 생각한다. 우리할망 왕소금 하나로 진솔한 음식을 만들던 그 배지근한 제주의 국을 생각한다. 음식 안에 들어있는 질곡의 역사와 문화, 제주의 감수성은 분명 이 그릇 하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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