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분(자연농 농부)
▲ 강성분(자연농 농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 사는 세상. 그중에서도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주. 난 이곳에 산다. 내가 제주에 살며 제주인들 흉을 볼 때가 종종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제주사람들이 뒷담화를 많이 한다는 말이다.
뒷담화 한다고 뒷담화를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이 부끄럽고도 우스운 모양새다. 그래서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물 흘러가는 대로 살자’고 다짐해보지만 무심하고픈 나의 일상을 옷 어딘가에 붙은 가시처럼 따끔따끔 찔러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타지인들에게 늘 부정적으로 회자되는, 그래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제주의 또 다른 얼굴, 괸당문화이다. 사실 괸당문화는 가문 이기주의나, 나아가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부칠 만큼 나쁜 것이 아니고 제주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원래 공동체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전통 문화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매도되고 있을까?
괸당문화의 특징은 바로 잘난 괸당 밀어주기이다. 여기저기 나부끼는 플랜카드에는 온통 출세한 괸당 밀어주고 축하하기 일색이다. 이렇게, 잘난 괸당 밀어주기에 치우친 괸당 문화를 좀 힘들고 어려운 괸당 돌아보기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마을마다 독거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제주에서도 독거노인들이 혼자 눈을 감은지 한참 만에 발견되는 일이 다반사다.
실제 제주에 와 처음 살았던 집이 이전에 오래 비어 있었던 이유가 할머니 혼자 돌아가신지 몇 달 만에 발견된 것이 소문이 나서였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서울서 이사 온 내게 이웃 아주머니가 해준 이야기다. 내가 겁먹기를 기대하신 모양이지만 나는 “할머니가 외로웠겠어요. 영혼이 계시다면 내가 와서 깨끗이 치우고 함께 사니 좋아하시겠죠?”하니 “처녀가 참 겁도 없다” 하셨다.
어느 곳에선 할아버지가 혼자 사시다 목숨을 끊은 일이 있다. 그 할아버지를 가끔 들여다보고 돌봐주신 분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느덧 자신의 책임처럼 되어버린 일을 혼자하자니 꽤 힘드셨던 모양이다.
복지부가 자식이 있는 독거노인들에 대한 실태까지 파악하고 돌보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리사무소나 부녀회, 청년회가 힘을 합치면 가능한 일이다. 마을자체에서 파악한 사항을 읍사무소는 일년에 한 번씩 보고받고 이에 대해 마을 주민이 나름의 대책안을 마련해 시행하면 관이 마을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내 괸당 뿐 아니라 남의 괸당, 혹은 그동안 갈등관계에 있던 집안의 어른도 돌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화합의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내 삼촌을, 혹은 어쩔수없이 두고 떠나온 내 부모를 사이가 나빴던 친구나 형수가 와서 빨래라도 해주고 갔다고 하면 얼마나 고맙고 그동안의 감정에 회한을 가질까.
미운 괸당이 이뿐 괸당이 되는 건 참 어려워 보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쉬울 수도 있다. 내가 너무 순진한가? 우리 평범한 유권자들이 잘난 괸당들의 각축전이 아닌 못난 괸당들에게 눈을 돌려 그곳을 바라보면 잘난 괸당들도 결국 그곳을 보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아름다운 괸당문화에 대한 입소문이 자자해지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