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초가 앞마당, 누렁이개 한 마리 엎드려 있다. 서귀포 5월 낯선 여행자들을 맞는다. 중섭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했던 시절도 아늑한 기운은 가득하였을 것이다. 예쁘게 단장한 찻집, 예술가의 발길이 모여지는 예술의 거리다. 이중섭거리는 작은 공연을 해도 좋고 전시를 해도 시를 읊어도 노래를 해도 좋다. 한 눈에 들어오는 거리와 작은 집들이 전해지는 살갑고 따스한 기운의 조합이 흥미롭다. 마당을 펼쳐낸 사람과 채워주는 이들, 서로를 향한 고마운 소통의 장은 주말마다 이어진다.
이중섭 화백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아마 이 즈음 걸음을 멈췄을 것이다. 언덕을 오르다가 돌아서서 바다를 보았을 그곳 즈음에는 허름한 큰 건물 하나 있다. 옛 서귀포에 극장은 64년 안익태가 연주도 했다는 곳이다. 오랜 시간 동안 추억을 함께 하였던 곳, 8년전 까지만 해도 영화상영을 했었다. 그곳 바로 뒤에는 비념하는 굿소리,몇 천 년 들렸을 ‘서귀포본향당’이 자리잡고 있다. 신석기시대 천지연의 생수궤유적,조상들도 이 언덕에서 먼 바다의 바람을 감지하려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가까이는 수 세기를 넘나들며 비탈진 언덕은 시대의 문화를 함께했다. 이중섭거리는 서귀포사람들의 삶을 담아내는 문화와 예술의 역사성을 함께하고 있기에 더욱 의미있는 곳이다.
빠르게 변하고 새롭게 만들어내야 되는 현실에서 이곳은 천천히 지나는 시간의 흐름을 안고 있다. 아마 가장 오래 전 마을이 생겼음직한 아늑한 지형이다. 아기자기한 돌담과 초가가 보이는, 이중섭정원은 옛 마을의 집터 자리를 그대로 살려 보존한 가치있는 곳이다. 다른 곳에서 흔희 보는 공원들과 달리 독특한 운치를 준다. 미술관은 이중섭 작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열악한 상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이중섭의 명성이 분명 역할을 하겠지만, 협소한 미술관의 갈증을 소박한 정원이 풀어내주기 때문은 아닐까. 천천히 둘러볼 수밖에 없는 구조의 정원, 함께 이곳을 찾은 이들과 절로 이야기를 하게되는 자연스러운 돌담길이 정겹다. 초가의 이웃 주민 강치균선생이 밭 안에 흙을 일구어 만든 이중섭미술관의 소박한 우영팟(집텃밭)을 본다. 마을 옛 집들은 사라졌지만, 제주 정취 가득하다. 한겨울 이 우영팟 푸른 채소는 서귀포만의 정취를 안겨주는데 충분하다. 제주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당당하게 표현한 문화 이 정원에서 작품에서 다 못 본 화가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돌담 사이로 축축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온다. 힘겹게 이제 유월이 오고 있다. 급히 식사를 하고 비행기 시간에 맞춰 떠나야 했던 여행이 싫어 다시 왔다 하는 여행자를 만난다. 유월 습습한 공기를 벌써 만난듯 묵직한 향기 지천에 가득하다. 천지연 절벽 생수궤 인근에서 불어오는 사스레피, 구실잣밤 나무가 그 새순이 뿜어내는 향기 맡으며 남방의 상록수 생명이야기 전한다. 그 향기 천천히 들이마시고 다시오라 권했다. 그 자연과 함께 이중섭거리는 제주사람들이 켜켜히 쌓아놓은 문화예술의 기운을 밟아 갈 수 있는 천년의 길이었으면 한다. 시류에 만들어지고 또는 사라지는 그런 길은 아니였으면 한다. 시멘트현무암 보도블록이 아닌 오랜시간 함께 걷던 발자취가 서리는 돌길,천년의 길이기를 바란다. 물밀듯 들어오는 대륙의 문화들 속에서 당당히 우리를 지켜내는 길, 제주문화를 아끼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과 제주역사와 깊이를 자랑스러워 할 때, 지금의 문화를 오롯이 지키며 천년을 이 거리에서 걸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