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당선자 이석문, 그는 누구인가]

이석문 당선자는 4남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장애를 갖고 있던 여동생이 어린나이에 세상을 떴고, 20대에는 큰 형과 남동생을 잃었다. 기족의 상실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모와 남은 동생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삶에 짙게 깔렸다. 사진 오른쪽 아래가 이석문 당선자.

학창시절, 왼쪽 위가 이석문 당선자다. 이 당선자는 언제나 집안에서 큰 어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 하는 삶을 살았다. 주위에서 이 당선자를 향해 '딱딱하다' '강하다'는 평가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가슴 깊은 곳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감성이 많지만 이를 그대로 표현하는 '기술'이 모자라 타인에 오해를 받는다.

이석문 당선자의 아내 송여옥씨(외도초 교사)와 두 아들의 사진.

전교조 제주지부장 시절의 이석문 당선자. 2000년에 당선돼 재임으로 2004년까지 지냈다.

전교조 제주지부장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전교조 송년의 밤 행사에서 부인 송여옥씨와 무대에 서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전교조 활동 모습.

전교조 활동 모습.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이석문 당선자를 오랜시간 봐온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얘기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망설임없이 움직이는 사람, 다들 '어렵다'하지만 결국은 해 내고 마는 사람".

이 당선자는 제주서초등학교와 제주제일중, 오현고를 나온 뒤 제주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5년 여수 여천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현고에 재직하던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면서 인생의 큰 파고를 겪는다.

해직 후 아내와 두 아들을 책임지기 위해 학원강사를 하기도 했던 그는 어려웠던 5년의 생활을 견디고 세화중학교 교사로 복직, 2000년 전교조 제주지부장에 선출된다.

전교조 제주지부장 시절은 제주도교육계가 잇단 비리 파문으로 사상 유례없는 혼란을 겪을 때였다. 2004년 1월 김태혁 전 교육감이 인사비리 파문으로 불명예 퇴임했고, 11대 오남두 당선자는 다른 후보들과의 불법 돈거래로 구속사태를 맞았다. 당시 이 후보는 40대 초반의 젊은 지부장이었다. 제주교육의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교육청과 적극 맞섰다.

2010년에는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선거에 나선다. 교육의원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제주에서 진보계열 교육자가 후보로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출마도 화제였지만 당선에 대해서는 부정적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선, 첫 진보 교육의원으로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2014년, 그는 제주도교육감 역사상 최초의 첫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되며 다시한번 제주지역 선거 역사에 놀라운 신화를 창조한다.

이 당선자는 1985년 교단에 선 이후 29년간 제주지역 교육계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의 현장에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일에는 혼자라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교조 가입이 그랬다. 전교조라고 하면 '빨간딱지' 낙인 먼저 찍히던 때였다. 안정된 삶의 기반 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많은 교사들의 바람일 터. 하지만 그는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위해서는 안정보단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을 당했을 때에는 당장의 내일이 두렵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 확신했고,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친환경 농산물 급식도 그가 이끌었다. ‘제주도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사용에 관한 지원 조례’에 적극 참여했다. 조례 제정 운동을 벌였고 주민발의를 한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제주연대’ 상임대표로 활동하며 ‘친환경 급식 전도사’로 본격 이름을 알렸다. 이는 이 당선자가 교육의원을 하며 동료의원들과 발의, 제정한 ‘친환경무상급식 조례’의 시초가 됐다.

교육의원으로 재직하면서는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조례제정 실적을 남겼다.

읍면지역 학교와 학교 비정규직, 다문화 가족 등 사회적 약자와 교육에서 소외당할 수 있는 영역에 지원을 확대하는 조례를 주로 제정했다. 학생들의 건강을 챙기고, 수업 본연의 활동을 확립하기 위한 조례도 만들었다.

‘제주도교육청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관리 조례안’, ‘제주도 농어촌지역 학교 초·중·고생 교통비 지원 조례 전부개정조례안’, ‘제주도 학생의 정신건강증진에 관한 조례안’ ‘제주도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한 지원에 관한 조례안’, ‘다자녀 학생 교육비 지원에 관한 조례안’ ‘4.3평화교육 활성화 조례’ 등이 있다.

여기에 교육청의 작은학교 통폐합 조치에 맞서 각 읍면지역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통폐합을 막아냈다. 평생 과제로 생각하는 고입제도 개선 또한 학부모 등과 간담회를 통해 해법을 만들어냈다.
4.3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진상규명에 온 힘을 쏟았다. 제주4.3연구소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제주4.3유족회 제주시 중부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제주4.3의 전국화에 공헌했다.

지난 29년 그는 때때로 벼랑끝에 섰고 더러 양지 위에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어느 자리에서도 초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직 한 가지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지향점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 그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하는 것. 그는 이제 제주교육 전체를 책임지는 가장 높은 자리에서 새로운 4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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