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옥자(수필가)
▲ 공옥자(수필가)
오래 된 노트를 뒤적이다가 쪽지에 적힌 글을 발견했다. 누구에게 건네려 했을까.
유혹의 마음이 읽혔다.
 “어느새 햇살이 뜨거워졌습니다.
열기 틈새로 슬쩍 스치는 바람이 전율을 흩뿌리고 지나갑니다. 그 순간에 언 듯 바람과 열정에 빠집니다.아무에게도 들킬 염려가 없는 바람의 애무 속에 깊은 숨을 내쉽니다.”
고사리 한 줌 들고 들판을 해맬 때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몸의 감각을  푸르게 깨웠다. 이 민감한 반응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바람에 빠지다.’ 라는 표현은 내 진심인 데, 더운 여름 산기슭에서 불어 온 바람의 황홀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사랑은 맨 처음 손을 내민다’ 어느 영화 속 대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오래 망설이던 두 사람이 손을 내밀어 최초의 체온을 느끼는 순간,  손으로 전해오는 느낌은 희열이다. 사랑의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면 연인들은 잠시 세상을 잊는다. 사랑을 확인하던 떨림이 누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바라보고, 먹고 ,마시고,  만지며,  향기와 소리에  취하는 우리의 감각은 고달픈 생의 축제다. 동물에게도 감각은 생의 에너지일 것이다. 구애의 춤은 현란했다. 수컷 새는 몰입하여 암컷 주위를 돌며 온힘을 쏟았다. 눈은 오감을 깨워 드디어 암 컷의 문을 연다.
돌아보니 내 젊은 날,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유두에 가물거리던 감각이 있었다. 어미만 그랬을까. 아기는 포근히 안겨서 입술에 닿는 촉감에 행복했으리라. 달달한 젖의 맛과 함께 어린 날의 어미젖은 특히 남성에게 영원한 갈망을 심지 않았으랴.
아기의 볼에 볼을 대면 어느 엄마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새끼가 그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어미를 붙드는 것은 신의 의도였을 것이다. 철이 바뀔 때마다 살짝 풀 먹인 면 이부자리의 감촉은 하루의 피곤을 씻어주곤 했다. 몸에 닿는 예민한 느낌들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행복하게 하던가.
신발 속에 모래알이 들면 발의 감각은 신호를 보낸다. 모래알을 털어 내고 나서 찾아오는 편안함, 등짝에 작은 벌레가 고물거려도 감각은 빠르게 경보를 울린다. 끄집어 내고나서 느끼는 안도감. 감각의 포진은 빈틈이 없다.아랫배에 차 있던 변이 빠져나오는 항문의 시원함, 한 밤에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면 그 귀찮은 행보 끝에도 쾌감이 있다. 배설 후에 오는 후련함은 누구나 아는 즐거움이다, 사찰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 (解憂所)라고 부른다. 볼 일은 몹시 급박한데 근처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을 때, 어떤 사람도 안절부절 당혹감이 든다. 그 근심이 작은 일이 아닌지라 해우소란 얼마나 절묘한 명명인가.
사무치는 슬픔이나 고통은 내면에서 일어나지만 정신의 일인데도 찢기는 가슴의 통증을 동반하여 거기에도 은밀한 선물이 숨겨있다. 고통 속에서 정화가 뒤 따르고 눈물 끝에도 서늘함이 온다. 몸은 고루고루 생의 모든 순간에 쾌감을 비장해두고 우리를 다독이는 것이다.
꽃은 흐드러지고 새가 우짖고 하늘은 변화무상하여, 삼라만상이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차 있는데, 그 놀라움을 인지할 수 있는 감각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비록 천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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