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시인/세계자연유산해설사)
▲ 최창일(시인/세계자연유산해설사)
요즘 나는 연두 빛 녹음이 뿜어내는 상긋한 공기를 마시며 도평동 영선이 동산에 자리하고 있는 밭 배미로 출근한다.
시가지를 벗어나면 자연은 찬연한 연녹색 푸르른 광채를 발하며 싱그럽게 다가온다. 눈이 닿는 곳마다 연두 빛이 넘실거린다.
오월의 목가적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현대인들은 각박하고 찌든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길 염원하며 대자연의 낭만을 그리워하며 지내는데, 나는 자연스레 자연과 벗 삼으며 생활하고 있어 행복감을 만끽하게 된다.
밭 담 너머에 황금물결처럼 일렁이는 보리밭이며, 귤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과수원의 농로길 사이로 무성하게 자라는 들풀들이 뿜어내는 풀 향기와, 봄이 연출하는 생명의 유희를 보며 이 보다 더 좋은 생활의 청량제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마음껏 숨 쉬며 활동하는 공간인 밭 배미로 들어서면 영선이 동산 지킴이처럼 보이는 멋진 컨테이너로 된 글방 겸 농기구 보관 창고가 있다.
 내 손길이 묻어있는 밭 배미는 내가 기울인 정성에 보답이나 하려는 듯, 내 가슴처럼 메말랐던 남새밭이 지금은 기름진 문전옥답처럼 변했다.
밭 배미가 있는 곳은 아침에는 산바람이 불어오고 정오가 됐는가 싶으면 바닷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온다.
그 공기를 들이마시는 밭작물과 꽃동산 무대에 농염한 꽃향기 때문에 벌과 나비는 꿀 채집에 분주하다.
숲에서는 산 까치와 멧새들이 지저귀며, 휘파람새 울음소리에 이슬에 젖은 초목들은 바람결에 흔들리며 호응한다.
밭 배미와 더불어 내 육신도 맑아졌다. 남들은 나를 보고 늘씬해 졌다고 한다. 밭 배미와의 생활은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크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놓은 예술품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건강이 부쩍 좋아진 느낌이 든다. 자연스레 내추럴 힐링이 되고 있다. 내가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서 짜릿한 황홀경을 맛보고 지내는 것을 알면 누군들 부러워하지 않겠나 싶다. 
 밭 배미는 나지막하고 예쁜 동산에 위치해 있다. 밭 배미 중심으로 동 편과 남쪽은 귤원으로 되어 있어 귤꽃 향기가 날아오고, 서 편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푸르름을 과시하고, 북 편은 푸른 바다가 아스라이 신기루처럼 펼쳐있어 여객선과 화물선들이 관탈섬 사이를 누비며 지나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밭 배미에서 눈을 치켜들면 한라산의 신령스러운 모습이 고즈넉하게 다가온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했는지 선친께서 살아계실 때 내가 죽거들랑 이곳에 묻어 달라 유언을 남기셨고, 나는 청개구리처럼 이곳에 모셨다. 선친의 묘소 곁에 조모님 묘소가 있어 모자분이 도란도란 지내시는 것 같이 보인다.
나는 천상 같은 영선이 동산에서 밭 배미를 가꾸느라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오일장마다 모종을 사다가 심고 씨앗을 뿌렸다.
여러 가지 화초와 밭작물 심어서 가꾸면서 가히 천연 농산물 박람회장처럼 만들어 놓았다.
인생의 희노애락에는 균형이 있게 마련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항상 불행하게 지내거나 늘 행복하게 놔두지 않는다. 낙심과 좌절의 반대편 쪽에는 행복이 도사리고 있고, 실패와 힘듦의 대칭 쪽에는 기쁨과 환희가 있다.
자연과 벗하여 지내다보면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된다. 흙은 인간들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며, 사술을 부리지 않고 뿌린 만큼 가꾼 만큼 소득을 안겨준다. 자연은 제 혼자만 살려고 아등바등 발버둥 치지 않고, 하늘의 섭리에 순응하며 저절로 자라고 있다.
대자연의 교훈과 함께 잔인한 사월의 아픔을 삭이며, 희망과 용기를 이야기 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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