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시인.소설가)
▲ 김관후(시인.소설가)
세월호 침몰로 한국언론은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로 큰 획을 그어버렸다.
기자들은 ‘기레기’를 넘어 ‘흡혈귀’ 같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기례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이다.
왜 언론이 이 지경이 됐을까? 물론 세월호 참사가 낳은 결과이다. 그 민낯 중에는 언론이 있었다. 사고가 나자 방송은 ‘학생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언론이 현장에 가지도 않고 리포트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내보냈다.
정부 발표를 검증하고 비판해야 할 의무를 내팽개쳤다. 승객들은 SNS를 통해 최후의 순간을 외부에 알릴 수 있었고, 그것이 오보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언론도 침몰하고 말았다. 국민들은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고 말았다.
언론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잘못한 당사자가 자신들의 잘못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 데스크 그리고 경영진이 변해야 언론이 바로 선다.
기자들이 국민을 위로하는 방법은 진실보도와 공정보도다.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영예를 얻었겠는가. 정권과 운명을 함께 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언론도 각성을 해야 한다.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어디 가서 ‘기레기’들이 쓴 기사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과거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해직이 되고, 감옥까지 간 기자들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그나마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정보도를 위해 노력을 한다면 얼마든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언론은 1970년대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라는 말을 들었다. 왜곡 보도와 오보 등으로 진도 현지에서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피해자 가족들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한 채 외신과 인터뷰를 했다.
우리 언론들이 앞장서서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나 정부에 대한 불만, 구조 문제를 보도해야 함에도 외신이 먼저 이를 보도했다, .
그렇다면 제주에도 ‘기레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런 질문이다. 어느 관공서에는 ‘사이비기자 고발센터’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사이비기자가 서식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짧은 지식과 외눈박이 시각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언론인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써야할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 그리고 상업주의로만 치달으면서 지역의 아픔을 외면하는 언론 현실은 그만큼 자정이 필요하다.
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는 쓰레기 기자들을 처벌하는 법은 없을까? 기자들의 횡포에 우리 도민들은 물론 지방 공무원들,
심지어는 아무 관계없는 기업과 일반 시민까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객관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가 몇이나 될까? 기자들이 쓰레기라면 당연히 쓰레기를 치우는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저 먼 시절 어느 신문의 1948년 5월 21일자 기사를 읽어보자. ‘기레기’의 발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 양민을 ‘폭도’로, 그리고 ‘전투태세를 완비하고 제주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과거에도 ‘기레기’는 존재하며, 현재도 ‘기레기’는 존재한다.
“제주도 폭도 진압을 위해 철도관구 경찰관 350명과 제8관구 및 제6관구 경찰관 100명 총합 450명이 경무국 당국 지령에 의해 전투응원대로 전투태세를 완비하고 19일 아침 목포를 출발 제주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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