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축구 대표팀 감독이 성원을 보낸 팬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며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월드컵을 가기 전에 국민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겠다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희망 대신 실망감만 드리게 돼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로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홍 감독은 "그간 많은 실수가 있었고 저로 인해 오해도 생겼는데 그런 것이 제가 다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 점에 대해 다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1990년에 선수로 처음 국가대표에 들어가 24년 정도 대표팀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하며 "그동안 부족한 저에게 많은 격려를 해주셨고 때로는 따끔한 채찍질도 해주셨는데 오늘로 저는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사퇴 의사를 발표했다.

    홍 감독은 "떠나고 앞으로도 좀 더 발전한 사람으로서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홍 감독과의 일문일답.

    -- 유임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다시 사퇴를 결심한 배경은.

    ▲ 알제리와의 경기가 끝나고 사퇴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또 벨기에전까지 마치고 나서 사퇴 의사를 (협회에) 말씀드렸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와서 (아시안컵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에 팀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 제가 간단하게 사퇴를 하는 것도 무책임한 생각이라고도 여겼다. 또 저와 함께 했던 선수들이 눈에 밟히는 등 여러 가지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사퇴 결심을 하게 된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결론을 내리고 판단한 것이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선수들과 다시 잘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을 했다.

    -- 토지 구매 등 사생활이 들춰진 것이 영향을 줬는지.

    ▲ 땅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제가 그동안 그렇게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 훈련 시간에 나와서 땅을 본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그것은 절대 아니다. 동영상으로 나돌았던 회식에 대해서는 당시 제가 사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또 어린 선수들이 패배에 대한 슬픔이 깊었고 저는 그 부분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

    -- 월드컵 실패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일본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이 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월드컵에서 실패하고 나서 감독이 다 바뀌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월드컵 실패의 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철저한 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전술적인 부분과 선수 컨디션 부분에서 잘못이 컸고 그런 부분을 정리해서 대한축구협회에 넘길 계획이다. 다음 월드컵 준비하는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됐으면 한다. 우리 선수들 역시 이번 월드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 한국 축구 감독은 '독이 든 성배'를 받는 자리라는 말이 있다.

    ▲ 한국 축구는 선수나 지도자들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꼭 그렇지는 않다. 또 그런 부분을 알고 감독을 맡은 것 아니냐. 모든 것이 결과론이기 때문에 나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실패한 감독이다. 앞으로 어떤 분이 새로 오실지 모르지만 언론에서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 앞으로 계획은.

    ▲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등한시했던 가족들과 더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지 않을까.

    -- 다시 월드컵을 준비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 실패 원인 가운데 제가 지역 예선을 거치지 않은 것이 컸다고 생각한다. 예선을 거쳤다면 선수들의 장단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 보니 제가 아는 선수들로 팀의 골격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기게 됐다. 특히 지난해 7월 동아시안컵과 1월 미국 평가전을 치르면서 국내 선수들과 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많이 평가했다. 결국 유럽에서 뛰지만 경기 출전 기회는 별로 없는 선수와 그보다 조금 수준이 떨어지지만 국내에서 많이 뛰는 선수들을 놓고 어떻게 선수를 구성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국내 선수로 구성된) 1월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0-4로 진 것이 제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도 이런 것들이 한국 축구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 엔트리를 '의리'로 뽑았다는 논란이 있었다.

    ▲ 세상에 어떤 감독이 월드컵에 나가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만 데리고 가겠느냐. 저는 더 철저히 검증을 했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라도 100%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외부에 좋지 않게 비친 것에 대해서는 제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 알제리전 비디오 분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 러시아와의 경기가 끝나고 나흘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 4일에는 회복 훈련이나 컨디션 트레이닝, 전술 훈련 등도 해야 하고 그것도 선수들의 피로도도 고려해야 한다. 알제리 경기 영상을 코칭스태프는 수십 번 봤지만 선수들은 나흘 사이에 두 번 보기가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1차전 경기 영상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알제리전 실패가 비디오를 몇 번 봤느냐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적으로 상대 전술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제 불찰이다.

    --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도 실패라는 말이 나오는데.

    ▲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준비 과정에서 선수들의 체력에 관한 각종 수치는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경기를 뛰는 체력에서는 조금 부족했다. 후반에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있었다.

    -- 1년간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 대표팀 감독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1년을 되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고 저도 축구보다 다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선수들이 팀에 돌아가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훈련하고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 유임과 사퇴를 오간 이유는.

    ▲ 귀국 공항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면 그냥 쉽게 비판을 조금만 받고 물러나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6개월 사이에 아시안컵을 새로운 감독이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제 계약 기간도 아시안컵까지였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던 면도 있다. 아시안컵까지 한다는 것은 바로 사퇴하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렵고 힘든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비판을 끝까지 받고 떠나는 것도 마지막 일이라고 여겼다.

    -- 예방 접종이 늦은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 비행시간과 현지 도착 후 시차 적응 시간에 대해 충분히 파악을 했다. 또 도착 후 훈련량이 많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다. 현지에 도착해서 (예방 접종 후유증 때문에) 몇몇 선수가 열이 오르고 저 역시 열이 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곧바로 휴식을 취하면서 컨디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다만 선수들의 컨디션이 90%에서 95%로 오르는 상태, 아니면 90에서 85%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상태 정도에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 외국인 코치나 기술위원회에서 주는 전력 분석이 도움됐는지.

    ▲ 굉장히 좋았다. 다른 팀 경기에 대해 코치들이 분석한 역할에 대해 전혀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만족했다.

    -- 앞으로 다시 감독을 할 마음은.

    ▲ 축구 선수와 코치, 감독을 했고 보이지 않는 능력이 또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역시 축구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앞으로도 그간 해온 사회 활동을 많이 해야 하고 주위 어려운 사람도 많이 도와줘야 한다. 여담이지만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역할을 많이 못 했지만 임기를 마치고 나서 많은 업적을 남기지 않았느냐. 24년간 대한민국 위해서 최선을 다해 기분이 좋고 그동안 많은 성원을 받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마지막 소감은.

    ▲ 고맙다. 이제 많은 카메라 앞에 설 일이 없는데 오늘 좀 더 많이 받고 떠나겠다. 그동안 부족했던 점을 다시 공부하겠다. 다시 여러분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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