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현    춘    식

‘줄’은 노나 새끼 같은 것들의 총칭으로서 무엇을 묶거나 동이는데 쓰인다. 재료에 따라 짚줄, 신서란줄, 띠줄, 칡줄, 첫사줄로 부르며, 그 종류도 집줄, 밧줄, 오랏줄, 포승줄 등 다양하다. 또한 ‘줄’은, 사람이나 물건이 늘어진 행렬을 말한다.

일렬로 나란히 서라고 할 때는 ‘한 줄로 서시오’라고 호령한다. 단숨에 내쳐 달리는 달음박질은 ‘줄달음’이요, 여러사람이 줄을 지어 도망가는 것을 ‘줄도망’이라고 한다. ‘줄’은 우리의 일상에 흥을 돋구는 놀이문화를 탄생시켰다. ‘줄넘기’는 즐거운 놀이다.

어린시절의 여학생들이 고무줄 넘기와 어른들의 밧줄넘기는 겨루기의 신바람과 더불어 오락적 포만감을 안겨 주는 전래놀이다. ‘줄다리기’는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갈라, 줄을 마주 잡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본래 줄다리기는 한 해의 길흉을 점치고 풍년과 풍어 등을 기원하는 마을의 대동행사였다. ‘줄타기’는 공중에 친 줄의 위를 건너 가는 곡예로서 그 아슬아슬한 맛에 구경꾼들의 오금을 쥐게 한다.

‘줄서기’는 일상생활의 기본이다.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 댓돌 위에 신발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 짐수레의 바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 학교길에 동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유치원때부터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라는 동요 줄서기를 배운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도 줄서기를 벗어날 수 없다. 사회에서도 줄서기는 계속된다. 버스나 비행기도 줄서서 기다리다가 타야 하고, 극장이나 경기장에 입장할 때도 줄서기는 질서의 기본이다. 줄서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다. 줄서기는 민주의식의 발로이며 선진시민의 행동의 가늠자가 된다.

‘줄서기’의 결정판은 선거판이 아닐까?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작은 선거판이 벌어져도 네편 내편으로 갈라서서 줄서기를 한다. 언론에서는 어느 집단이 줄서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도하기 마련이고, 직장인들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어느 줄에 설까하고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승자의 편에 줄을 선자에게는 출세의 동앗줄이 내려 오지만, 재수에 옴이 붙은 자에게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헛줄타기가 시작된다. 출세를 위한 줄서기 재주도 없고, 권세는 더욱 아득해서 ‘등신 헛줄타기’라는 사설시조 한편을 지어 위안을 삼아 본다.

세상은 줄타기 세상 아슬아슬 줄타기 세상
소처럼, 밭 가는 소처럼 등뼈 휘도록 일만 잘하면 높은 자리 굴러 오리라 과대 망상증 걸린 등신, 공명정대 마패로 여겨 게거품 물며 악다귀 쓴들 코방귀나 뀔 소린가 소귀에 대고 경읽는 꼴인걸, 이권 날뛰는 서류철들을 법의 고삐로 묶어 놔도 허깨비로 빙빙 도는 회전의자는 여우들 차지, 청백리 한 마음으로 백일몽 꾸는 게 휠씬 낫지 엉그적 엉그적 오리다리로 황새 걸음 쫓는 등신…….

줄타기, 줄타는 법도 손금에 타고 나야지 원숭이도 떨어지듯이 때론 낙법도 익혀야 해, 눈치 코치 볼게 뭐 있나 뱃가죽에 철판 깔고 용궁 찾던 토끼처럼 쓸개랑 떼어 던져 버리고, 주인 눈치 슬슬 보며 꼬리 감추는 굶은 개처럼 상관님 말씀은 공자님 말씀 구린내 나도 지당한 말씀, 구린내 나는 일 한두번인가, 일 한두번인가,

열 손 꼽아도 모자라지 직장 동료도 믿을바 못 돼 그들이 명예 줄 되어 주던가 갈치가 갈치 꼬리 물 듯 안주 삼기 다반산 걸, 오히려 흠집내며 살살 꼬아 바치기 일쑤 그 때문 등신이 된 일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젠 별 수 없어 줄 잡고 타기 해봐야지 야밤중에 도둑 고양이로 큰 빽줄 있는 집 울담 넘어 잠드신 똥개에게 머리 조아려 큰 절 해볼까, 응접실 문 빠끔히 열고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지체 높은 헛기침 소리 눈길 잡아 끌거든,

봉투 하나쯤 얼른 놓고 내빼볼까 도둑질 하다 보면 귀신도 곡하게 도트는 법 그 짓거리 도사쯤 되면 혹시 몰라 튼튼한 동앗줄 내려 주실지.
줄타긴 광대 몫인 걸, 나는 등신 헛줄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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