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지도층의 성희롱 사건

“우근민 전지사가 여성단체장을 집무실로 불러 성희롱을 했다는 여성부의 결정은 정당하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우전지사의 ‘성희롱 혐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전지사 성희롱 사건’은 한 지도층 인사의 타락한 도덕성이 얼마나 사회를 분열과 갈등의 광기로 몰아 넣을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구성원들에게 고개들 수 없는 발가벗은 수치와 밑 가리개를 걷어버린 부끄러운 혐오감을 안겨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지불한 사회적 비용은 또 얼마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제주도로서는 불명예이며 도민들에게는 모닥불 뒤집어쓰는 낯뜨거운 부끄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전지사 성희롱 사건은 “죽은 사람 위에 매질한다”는 식의 온정주의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뿌리까지 파헤쳐 지도층의 더러운 욕심이 사회를 더 이상 더럽히고 어지럽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산처럼 버티어서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조금은 살맛 나는 사회를 기대 할 수 있을 터이다.

비열한 책임전가로 분열 초래

우선 이 사건은 여성의 성을 유린하여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채우려 했다는데 충격적이다. 사태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여성의 성을 정치적 노리개로 삼으려 했던 후안무치한 야수의 색정. 그것은 지도자의 영역이 아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모습일 뿐이다.

더욱 역겹고 파렴치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비열한 책임전가다.
자신이 먼저 여성단체장을 집무실로 불러 “선거 도와 달라” 면서 가슴을 만지는 등 성희롱을 해놓고 피해여성의 자작극으로 몰아 세웠던 도덕성 파탄은 이미 지도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어디 이 뿐인가.
이처럼 사건 발단의 원인을 제공해 놓고도 “성희롱 사건은 조작된 정치적 음모”라고 엉뚱하게 정치적 경쟁자를 물고 늘어지는 비겁하고 지저분한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같은 뻔뻔한 기만술과 물귀신 작전으로 도민 사회를 분열시켜 제주발전의 에너지를 고갈 시키고 도민적 갈등과 증오만을 키웠을 뿐이다.

공직자들을 자신의 방어벽으로 삼고 그들을 피해여성의 저격수로 삼아 ‘인격적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던 야만의 시간들을 힘없고 불쌍한 ‘그때 그 여인’은 어떻게 잊을 것인가.

진실 밝히고 엎드려 사죄해야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찰은 또 어떠했는가.
“도둑이야” 소리쳤는데 도둑은 잡지 않고 소리친 사람만 잡는 격이었다.

성희롱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 겉만 핥으면서 정치적 희생양 만들기에만 급급했다는 도민적 비판은 그래서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당시 도민사회는 실망과 분노의 수준을 넘어 체념과 무관심으로 검찰의 수사결과에 냉소하지 않았던가.

지도자의 도덕성 파탄과 피해여성 공격의 하수인으로 앞장섰던 일부 타락한 공무원들, 편향된 검찰수사의 야합으로 사회전체가 ‘집단 곽란’을 일으켰는데도 사회적 도덕적 응징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주의 미래는 참담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어디에나 “용서”의 담론은 있다.
심리학자 ‘토마스 사스’는 “현명한 사람은 용서는 하되 잊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도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고 했다.

그러나 용서의 전제는 분명하다. 가슴 쥐어짜는 처절한 자기반성과 진실을 밝히고 엎드러 잘못을 사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전지사에게 보내는 마지막 도민적 관용이며 최후의 메시지다.

용서를 빌든 더 뻔뻔스런 타락의 길을 가든 선택은 순전히 우전지사의 몫이다.
어떤 선택이든 도민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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