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석한 여성 형사의 활약상은 흥미…워킹맘의 애환은 사라져

캅(cop)은 미세스(Mrs)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워킹맘이다.

서울경찰청 강력1팀장인 캅은 수사관으로서의 두뇌와 감, 추진력이 특급이다. 열혈 경찰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범인을 쫓고, 집에도 안 들어가기 일쑤다.

좋다. 멋지다. 이런 경찰만 있다면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는 수직상승할 것 같다. 근사한 옷을 걸치고 나와 말로만 일을 하는 드라마속 오피스레이디 대신,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며 땀을 흘리는 워킹우먼의 모습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런 엄마를 둔 탓에 어린 딸은 방치돼 있다. 밭에 씨만 뿌렸다고 아이가 절로 크는 세상이 아니다.

드라마는 애초 '경찰로는 백점, 엄마로는 빵점'인 미세스 캅의 이야기를 그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0회까지 방송된 현재 드라마는 빵점 엄마의 모습조차 그리지 않고 있다. 워킹맘은 없고, 열혈 형사만 남아있다.

월요일 밤 시청률 왕좌를 지켜온 '가요무대'마저 잡고 월화극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SBS TV '미세스캅'이 인기에도 불구하고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반쪽짜리 드라마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인공 최영진(김희애 분) 팀장은 험한 경찰 강력계에서 팀장을 맡아 성(性)을 뛰어넘는 능력과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세스캅'의 인기는 최팀장의 두뇌 플레이와 그가 이끄는 강력1팀의 팀워크 덕분이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가출소녀 성매매 집단, 안하무인 재벌2세의 과실치사 사건 등을 집념을 가지고 잡아내는 형사들의 노력은 스릴을 안겨주며 흥미를 끈다.

난다 긴다 하는 부하들도 다 놓치고 마는 단서를 최 팀장이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 사건을 해결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하들에게 지시만 하지 않고 몸소 총을 들고 뛰어다니며 범인 검거를 위해 끝까지 가는 열혈 아줌마 경찰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액션에 도전한 김희애의 터프한 모습이 여전히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의 이유 있는 변신이라는 점에서 반갑다.

하지만 드라마는 극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을 잇따라 배치해 불편함을 안겨주고, 최영진이 종종 냉정함을 잃고 감정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맥빠지는 지점을 노출하기도 한다.

특히 잇따라 등장하는 자극적인 칼부림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그 중에서도 7살 아이가 백주에 연쇄살인마의 칼에 찔려 죽는 이야기를 TV 드라마에서 마주할 때의 충격은 형언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런 참사가 벌어진 게 최 팀장의 어이없는 안이함 때문이라는 점은 최 팀장에게 초반 '민폐 형사'라는 수식어를 붙게 만들었다.

또 가출 소녀들을 연쇄살인마의 손아귀에서 구하려는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그러기 위해 형사가 '악의 축'으로 의심되는 자에게 난데없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그럼에도 오히려 약점이 잡히는 등의 상황은 감정에 치우쳐 '너무 나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남자 형사라면 과연 똑같이 했을까.

드라마 후반에는 최영진 팀장의 개인사가 비중있게 그려질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후반에도 지금과 같은 구도로 전개가 된다면 '미세스캅'은 왜 '미세스'를 내세웠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최 팀장이 범인 검거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 그의 어린 딸은 엄마로부터 방치돼 있다.

극 초반 최 팀장의 유치원생 딸이 하도 엄마를 보지 못하니까 도둑질을 하면 경찰인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는 에피소드 등 짧게나마 워킹맘의 애끊는 상황을 보여줬지만 그뿐이었다.

그렇게 엄마를 그리워했던 어린 딸은 그러나 막상 엄마가 경찰복을 벗을 위기에 처하자 "엄마가 경찰복 입고 있을 때가 제일 멋있다"고 말하며 엄마의 등을 밖으로 떠민 이후에는 '엄마' 최영진의 모습이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대신 드라마는 최영진의 동생이자 공무원 시험 준비생인 아가씨 남진(신소율)을 '24시간 보모'로 내세워 최영진의 딸을 '건사'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많은 이의 손길과 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드라마는 이를 간단하게 어린 이모에게 전가시키고 나몰라라 하고 있다. 할머니도 아니고, 직업 보모도 아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하는 어린 이모는 떼쓰는 조카를 위해 인생을 저당잡히고 있다. 공무원 시험은 번번이 떨어지고 조카 때문에 힘겨워하지만 열혈 형사 최영진은 동생이나 딸의 애환을 돌볼 겨를이 없다. 솔직히 그것을 돌아볼 마음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는 워킹맘의 삶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워킹'도 해야하고 '맘'도 돼야하는 게 워킹맘이지만, 직업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최영진은 '맘'의 책임이나 역할을 잊어버렸다. 이러한 최영진의 모습은 워킹맘에 대한 잘못된 기대와 이상을 심어주게 된다.

연말 쌍둥이를 출산하는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가 출산 휴가 없이 업무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자 거센 논란이 일었다.

메이어는 3년 전 첫 아들 출산 때와 마찬가지로 16주의 유급 출산 휴가를 가지 않고 대신 짧은 휴식 후 업무에 복귀할 예정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일하는 여성에 대해 '불공정한 기대'를 갖게 하고 '가족을 우선하지 않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세스 캅'의 제작진은 앞서 기획의도에서 "아줌마는 슈퍼우먼인데, 이런 무서운 인적자원을 여태껏 경찰실무에 투입하지 못한 것은 그야말로 애석하기 이를 데 없고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여성 인적 자원의 적극적인 활용 좋다. 바람직하다.

하지만 출산율이 최저 수준이고 육아를 위한 사회적 환경이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사회에서 과연 극단으로 치우친 최영진 같은 캐릭터를 내세워 드라마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의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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