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이야기 <20>세계적인 용암동굴, 만장굴

▲ 상층굴의 바닥에서 볼 수 있는 용암이 흐른 구조, 재2입구에서 하류로 약 600m 진입한 곳(이층굴).
▲ 이층굴의 바닥에서 관찰되는 로피구조(ropy structures). 만장굴 제2입구에서 상층굴을 통해 제1입구로 가는 방향.

우리 제주에는 세계 최고의 용암동굴이 있다. 만장굴이다. 흔히 우리는 아주 소중하고 세계적인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른채 살고 있다. 동네 심방을 알아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그런건지는 더욱 모르겠다. 용암동굴은 현무암의 용암이 흐른 화산지대에서만 관찰할 수 있다. 발견된 동굴의 길이만 무려 64 킬로미터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용암동굴인 하와이 카즈무라 동굴, 멕시코 수치옥 화산지역의 용암동굴, 이탈리아 에트나 화산의 용암동굴, 모두 제주와 비슷한 현무암지대의 용암동굴이다. 하지만 제주의 만장굴이 용암동굴의 규모나 내부구조의 보존 측면에서 최고다.

2003년에 문화재청에서는 제주도 자연유산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키려고 용역을 발주하였다. 당시 문화재청과 제주도청에서 생각하는 제주의 유산은 한라산의 다양한 식물자원이었다. 18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한라산과 제주도 운운할 때였다. 식물 분야를 담당하던 교수가 한라산의 식물과 비교하기 위하여 당시 세계유산이었던 일본 가고시마 앞바다의 야쿠시마를 방문한 후, 갑자기 용역의 방향이 바뀌었다. 수천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삼나무가 섬에서 잘 자라고 있고 식물의 수직분포가 확실히 구분되는 야쿠시마와 제주도는 비교 대상이 되질 못했다. 이렇게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한두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일본 큐슈지역의 세계유산지도 못가봤으니 말이다.

그 후 용역의 주제는 화산지질학 분야로 변경되었다. 차마 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우여곡절 끝에 선정된 주제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었고 여기에서 용암동굴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당시 동굴을 조사하기 위하여 제주에 온 외국의 동굴학자들은 만장굴이나 당처물동굴 하나만으로도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것을 들은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제주를 유네스코의 유산지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다름아닌 용암동굴, 만장굴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용암교와 함께 이층굴의 형태를 보여주는 만장굴. 먼저 상층굴의 동굴 바닥을 형성한 후에 계속 흐르는 용암류에 의해 나중에 하층굴이 만들어 진다. 만장굴 상류부인 제3입구 부근.

만장굴의 가치는 동굴의 규모와 다양한 내부구조가 잘 보존됐다는 점이다. 동굴 전체의 길이는 7.4㎞에 이른다. 만장굴은 이층굴로 되어 있다. 우선 왜 이층굴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용암동굴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이해해야만 알 수 있다. 이층 동굴 중에서 어느 동굴이 먼저 만들어진 동굴일까? 당연히 윗층 동굴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아래층 동굴이 만들어 진다. 윗층의 동굴을 만든 후에도 계속 흐르는 용암류는 동굴 바닥을 깍아내면서 아래층의 동굴 속으로 흐르며 이층구조를 만든다.

제주에서 1967년부터 동굴관광지로 개방된 동굴이 만장굴이다. 만장굴은 천장창(skylight)으로 입구가 모두 세 곳이다. 관광객들은 관람로가 개설된 1㎞ 구간만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들이 드나드는 입구는 제2입구이다. 제2입구에서 아래층 동굴속을 통하여 상류 방향으로 약 1㎞를 거슬러 올라간 곳에 용암석주가 있으며, 그곳에서 다시 되돌아 나오게 되어 있다. 동굴 입구 주변의 지표에서 볼 수 있는 현무암질 용암류는 동굴을 만드는 전형적인 파호에호에 용암(pahoehoe lava)이다. 제주에서는 ‘빌레’라고 부른다.

이 빌레 용암의 표면에는 마치 새끼줄을 꼬아 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밧줄구조가 잘 관찰된다. 제2입구 지표면의 해발고도는 82m이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하강 계단은 크게 두군데로 꺽여지며 아래층 동굴 바닥까지 내려간다. 고도계는 해발 60m를 가리킨다. 지표에서 동굴 내부까지 정확히 22m를 내려온 셈이다. 이렇게 동굴은 지표면 가까이에 있지않고 꽤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꺼운 용암류 속에 동굴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만장굴은 10여 킬로미터 상류부인 중산간지대의 선흘리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유출된 용암류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동굴 형성 초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거문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류는 경사 1° 내외의 매우 평평한 사면을 묽은 액체가 넓게 퍼지듯이 흐른다. 이런 흐름을 시트형 용암류(sheet flow)라고 한다. 당시에 흘러나온 용암류의 표면과 현재의 지표면은 동일하다. 그러니까 오름의 분화구에서 연속적으로 공급되는 용암은 지표면으로 덧씌워진 것이 아니라 바로 지하 깊은곳의 동굴을 통해서 바닷가의 하류로 배수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에 흘러나온 용암류는 동굴을 통하여 바다로 배수되어 김녕리, 월정리 해안의 빌레 용암과 투물러스(tumulus)를 만든 것이다. 이런 용암동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만장굴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만장굴 제2입구에서 반쯤 내려가면, 왼편으로 이층굴의 윗층 동굴이 보인다. 이 상층굴은 이곳에서부터 하류로 약 900m 정도 연장되어 있다. 붉은색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동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 용암동굴의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용암의 침식으로 깊어진 동굴바닥은 마치 붉은색 카페트를 깔아놓은듯 하고 어떤곳은 V자 형태로 바닥이 무너져 있기도 하다.

▲ 용암 석주, 만장굴 공개 구간 마지막 지점인 제2입구에서 1㎞진입한 곳에 위치. 상층부에 몇개의 동굴이 존재하며, 지표로 부터 유입된 용암류가 상층굴을 통해 하층굴로 유입돼 만들어 진 구조.

관광객들은 아래층 동굴 속으로부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어 있다. 동굴 내부는 트럭이 드나들어도 될 정도로 거대하다. 이렇게 동굴이 크고 넓어진 이유는 동굴속을 후차적으로 흐르는 뜨거운 용암에 의한 침식작용의 결과이다. 뜨거운 용암류가 동굴속을 흐르면 바닥을 계속 깍아내며 동굴은 넓어진다. 동굴 벽면에는 용암이 흘렀던 유선 흔적이 남아있다. 많은 양의 용암이 동굴 내부를 흐르는 과정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이것이 세계 최고의 용암동굴 만장굴을 관람하는 요령이다. 동굴 내부를 흐르는 용암류는 뜨거운 상태로 동굴 천정에 달라붙기도 한다. 용암 부가구조라고 한다.

만장굴이 동굴 내부가 거대하지만 천정이 불규칙한 형태를 보이는 이유는 용암이 천정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만장굴 내부의 낙석에서 관찰되는 하얀색의 광물은 마그마에 있는 포획암으로 규암의 조각이다. 거북바위도 천정에 달라붙어 있던 용암의 덩어리가 떨어진 다음, 동굴 내부로 흐른 용암류가 감싸고 있는 구조이다. 관람코스 마지막 구간에서는 동굴바닥에서 삐져나온 용암발가락(lava toe)을 볼 수 있다. 용암석주는 특이하게도 상층부에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층의 윗층 동굴을 통하여 아래층 동굴로 용암이 흘러내린 구조이다. 아쉽지만 관광객들은 여기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비공개구간인 용암석주에서부터 상류로 만장굴은 더 길게 연장되어 있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