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일까’ 우리는 일의 선후를 가리지 못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달걀이 부화하여 닭이 되니 닭이 먼저일 것 같다. 닭이 달걀을 낳으니 닭이 먼저일 것도 같다. 영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논쟁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유전자 입장에서는 ‘알이 닭을 낳는다.’ 최재천 교수는 동명의 칼럼집에서 그것을 설명한다. 하버드대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에 따르면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

달걀의 유전자가 자기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닭이라는 몸체를 잠시 이용했을 뿐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차드 도킨스의 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전자야말로 태초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 남을 ‘불멸의 나선’이다. 생명체란 그저 유전자들이 복제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하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하는 문제는 어렵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문제보다 어렵기는 더 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 우선 그 해석부터가 만만찮다.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성장은 나눠 먹기 전에, 우선 나눠 먹을 파이를 키우자는 것이다.

반면에 분배는 지금 있는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어야 파이를 키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그 말이 그 말인 듯 하다. 그러나 그것은 큰 사상의 흐름을 좌우한다. 한 국가의 형태를 결정한다.

▶동물사회에는 ‘비대칭이론’이 적용된다. 한 수컷이 모든 암컷들을 독차지해서는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다른 수컷들이 떼를 지어 폭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체제든 완벽하게 평등한 분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나눠 먹을 파이부터 키워 놓고 보자는 성장위주의 사고는 불평등의 심화로 자칫 사회기반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

나눠 먹을 것이 없는데도 부득부득 나누자고 우기는 것도 사회발전 동력을 훼손한다. 그래서 양자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어찌하든 적절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그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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