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초보자·가족 단위 여행객 등 많이 찾아
현재까지 17개 코스 개장···총 길이 198.3km

▲ 일본 규슈 사가 현 가라쓰시 나고야 성터 중 가장 높은 곳인 천수대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대마도와 이키섬, 현해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동은 기자

서귀포시는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를 통한 자매도시 교류 사업 초청에 따라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 사가 현 가라쓰시를 방문했다. 본지 기자도 방문단과 동행해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가라쓰 코스를 지면으로 탐방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27일 오전 9시 일본 규슈 사가 현 가라쓰시 레이호쿠 정 사무소.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세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가라쓰시는 물론 후쿠오카, 나가사키 등 각 지역에서 온 이들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연령대도 다양했다. 모두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를 걷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규슈 올레 대표적 코스인 가라쓰 코스는 난이도가 낮아 트레킹 초보는 물론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올레꾼들은 가벼운 복장에 손에는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스틱과 시원한 얼음물을 들고 있었다.

출발에 앞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이들의 얼굴에는 가라쓰 코스를 완주해야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잠시 후 출발 구호를 시작으로 힘찬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경사로에 톱밥이 깔려 있다. 비가 내려 올레꾼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행사 관계자들이 뿌린 것으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김동은 기자

초보자 코스라고 하지만 마냥 편하게 걸을 수만은 없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파른 경사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경사로에는 부드러운 톱밥이 깔려 있었다.

가라쓰 코스를 동행한 안은주 제주 올레 사무국장은 “전날 비가 내려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일부러 뿌려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걷기 행사에 참가한 올레꾼들이 길을 걷고 있다. 올레꾼들이 길을 따라 걷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나무에 리본 표식이 걸려 있다. 김동은 기자

가라쓰 코스에는 올레 표식이 길을 따라 걷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잘 연결돼 있었다. 리본은 나무, 전봇대, 울타리 등에 다양하게 걸려 있었다.

벽면, 담벼락, 도로 바닥 등에는 페인트로 그려져 있었고, 갈림길에서는 화살 표식을 볼 수 있었다. 올레꾼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제주 올레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 귤을 나타내는 주황색 표식이 걸려 있지만 규슈 올레는 파란색과 일본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다홍색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표식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길을 걷는 동안 다양한 풍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산과 들, 심지어 주택까지 인상 깊었는데 제주 올레와 쏙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라쓰 코스라는 사실을 모르고 걸었다면 제주 올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제야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코스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실제 가라쓰 코스에서는 서울과 경상남도 통영에서 온 한국인 50여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제주 올레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기대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에 올레꾼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김동은 기자

후쿠오카에서 왔다는 이시다 히로시(56)씨도 “올레꾼을 위한 환경이 잘 조성돼 있어 종종 가라쓰 코스를 찾는다”며 “올레가 규슈의 여행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라쓰 코스 시작점에서 두 시간 가량 걸으니 나고야 성터가 보였다. 성터 곳곳에는 규슈 올레 이정표인 ‘간세’가 놓여 있었다.

성터 중 가장 높은 곳인 천수대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은 일품이었다. 대마도와 이키섬, 현해탄 등이 한눈에 들어와 마음 속 고민까지 날려버리는 듯했다.

나고야 성터를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드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걱정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됐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급기야 옷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건물 처마에 잠시 신세를 졌다. 다행히 비는 금세 그쳤고, 잠시 멈췄던 걸음은 계속됐다.

걷다 보니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슬슬 허기가 졌다. 초콜렛이나 사탕을 미리 챙겨두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걷기 행사에 참가한 올레꾼들이 행사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김동은 기자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고 있을 때쯤 쉼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점심을 먹는 장소임이 분명했다.

너무 기분 좋은 나머지 어린 아이처럼 뛰었다. 점심을 나눠주는 쉼터에서 출발 전 행사 관계자에게 받은 쿠폰을 건네고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와 나베(냄비 요리) 도시락을 받았다.

오니기리를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 김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양은 비슷했지만 밥 안에 내용물이 없고, 소금 간만 돼 있었다. 문득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니기리를 먹으면서 연신 “오이시이(맛있다)”를 외쳤다. 이를 들었는지 오니기리를 건넸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점심도 든든하게 먹었으니 걷는 일만 남았다. 가라쓰 코스의 총 길이는 11.2km다. 지금까지 6.4km를 걸었으니 종점까지는 4.8km가 남은 상황. 걸음을 재촉했다.

길은 어느새 비포장 농로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앞으로 걷고 또 걸었지만 표식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것이 분명했다.

리본이 없는 길을 5분 정도 걸었다면 되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니 표식에 눈에 띄었다. 주변을 잘 살피지 않은 결과였다.

농로를 뒤로하고 코스 후반부로 접어드니 하도미사키 해안 올레가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안겨줬다. 자연이 조각한 주상절리와 푸른 해송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임이 분명했다.

▲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종점에 설치된 돌하르방으로, 서귀포시가 2014년 가라쓰시와 자매도시 체결 2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이다. 김동은 기자

아름다운 풍경에 취할 무렵 종점에 다다르니 돌하르방이 보였다. 낯선 외지에서 고향의 정취가 느껴졌다. 이 돌하르방은 서귀포시가 2014년 가라쓰시와 자매도시 체결 2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이다.

돌하르방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은 뒤 종점에 있는 해안 포장마차에서 소라구이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 피로를 씻는 것으로 규슈 올레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 서귀포시와 가라쓰시의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를 통한 교류회가 지난달 27일 무지개 송원 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허법률 서귀포시 부시장과 사카이 도시유키 가라쓰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동은 기자

서귀포시는 1994년 가라쓰시와 자매결연을 체결해 공무원 상호파견 근무, 농업인 및 여성단체 문화 교류, 노인 게이트볼 친선 교류 등 다방면에서 꾸준하게 교류를 해오고 있다.

규슈 올레는 이를 계기로 2011년 8월 사단법인 제주 올레와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업무 제휴 협약을 체결하면서 탄생했다. 규슈관광추진기구는 규슈 지역의 관광공사와 같은 기구다.

이에 따라 2012년 2월 제1호 규슈 올레 다케오 코스가 처음 문을 연 이래 지난해 11월 구루메 고라산 코스와 미나미시마바라 코스가 개장하면서 현재까지 17개의 길이 조성됐다.

규슈 올레는 규슈의 7개 현을 아우르는데 모든 코스를 합치면 장장 198.3km에 이른다. 제주 올레가 코스 개발 자문과 길 표식 디자인을 제공해 ‘자매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규슈 지역 공무원과 주민들이 올레길을 만들어 달라고 신청하면 제주 올레가 코스를 심사하고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개장하는데 가라쓰 코스는 삼수 끝에 문을 열었다.

규슈 올레가 처음 만들어진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방문객은 16만2490명이다. 한국인이 10만 4110명(64%)으로 가장 많다. 일본인도 5만 8380명(36%)이 규슈 올레를 찾았다.

이번 방문단의 단장인 허법률 서귀포시 부시장은 27일 무지개 송원 호텔에서 열린 교류회에서 “제주 올레가 제주 관광의 패턴을 바꿔 놓은 만큼 가라쓰시 또한 올레를 통해 관광 분야에서 새로운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 부시장은 이어 “올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규슈 올레가 앞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은 물론 세계인과 연결시켜주는 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덧붙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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