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4> 바르도박물관 ①

2015년 3월 18일, 튀니지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사무실 전화와 내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국제협력단 튀니지사무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휴대전화부터 먼저 받았더니 사무소 직원이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세요?” “방금 선생님 집 근처에 있는 바르도박물관에서 테러가 발생했어요” “오늘 집에 들어가시면 안돼요”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천장과 홀
▲ 바르도박물관에 있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주피터 조각상
▲ 바르도박물관의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유물

▲ 테러로 60여명 사상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1분 뒤에는 도서관 직원이 헐레벌떡 내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면서 사무실 전화를 왜 안 받느냐면서 영어로 “선생님 집 근처에서 테러가 발생했어요.” “코아카사무소에서 지금 데리러 온다고 연락 왔으니 빨리 퇴근 준비 하세요”라고 했다. 그 길로 나는 안가에서 아침에 입고 나온 상태로 1주일을 지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튀니스 중심가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다. 튀니지 국회의사당까지는 5분 거리이며 테러가 일어난 국립바르도박물관까지는 걸어서 10분 이내의 아주 가까운 곳이다. 나는 지금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역사의 한 현장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국립 바르도박물관에 무장 괴한들이 침입해 버스에서 하차하는 관광객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관람객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사격과 인질 테러를 벌였다. 이날 23명이 사망하고 38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사망자 중 20명은 폴란드,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의 국적을 가진 외국 관광객들이었다. 이중 일본 관광객도 3명이 있었다.

튀니지 대테러부대와 경찰이 박물관 내부 진입 작전을 펼친 끝에 현장에서 범인들이 사살되면서 인질극은 종료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괴한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이라 한다(나는 이곳에서 불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유학생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웃나라인 일본인도 희생이 돼서 마음이 아프다. 모든 희생자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튀니지는 5년 전, ‘재스민(jasmine)혁명’으로 23년간 이어진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중동의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발원지이다. 재스민(jasmine)은 튀니지의 국화(國花)이다. 그래서 튀니지의 혁명을 ‘재스민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후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은 다른 중동국가들은 혼란에 빠져 들었지만 튀니지는 과도정부를 거쳐 지난해 민주적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아랍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변신하고 있다.

이날 튀니지 정부는 “바르도박물관 테러는 튀니지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의 붕괴를 노렸다”고 발표했다. 며칠 후, 나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등 외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 수천 명이 테러행위를 규탄하며 거리 행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 청동상을 보호하고 있는 유리관에 총알 자국이 남아있다.

▲ IS의 타깃이 된 이유

나는 튀니지를 대표하는 바르도박물관을 자주 관람을 하는데 그 중 두 번은 테러가 발생한 후에 관람을 했다.

그런데 전시물을 보다가 갑자기 좀 특이한 점을 느꼈다. 보통 아랍권에서는 기독교 유물들을 거의 전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전시물의 90% 이상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 땅에 살았던 유럽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IS는 테러 당일 온라인에 올린 아랍어 육성 성명을 통해 이번 튀니지 바르도박물관에 대한 공격은 “튀니지에 있는 이교도와 악덕의 소굴 중 한 곳에 신성한 침범을 한 것”이라며 “튀니지 테러는 우리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었다.

여러 시대별 전시장을 한참 둘러보다가 갑자기 시선을 멈춘 곳이 있다. ‘어린 바쿠스, 청동상’을 보존하는 유리관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가만히 보니 박물관 테러 당시에 총알이 관통한 흔적이었다. 총알이 관통한 현장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그 방에 관람객은 나 혼자뿐이다. 한기를 느끼면서 얼른 다른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바르도박물관은 현재도 테러 당시 총알이 관통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튀니지는 테러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관광산업에 타격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가 혼란스러운 나라는 아니다. 국경을 접하는 지역 이외에는 치안이 잘 되어 있어서 사회는 매우 안정적이고, 길에서 만나는 튀니지 사람들은 친절하고 외국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희망이 보이는 나라이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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