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옛 놀이에서 배운다
윷놀이에서 현재 보드게임까지 이어진 놀이
모든 놀이는 규칙을 기본으로 하는 머리싸움
자치기·공기놀이·사방치기 등 공통점은 ‘자연’

▲ 지난 추석,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아이들이 민속놀이를 하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 제공
골목길은 숨이 멎었다. 학교도 방과 후가 되면 조용해진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또래들끼리 뛰어다니며 놀이를 하는 그런 풍경은 마치 흑백사진의 틀에서나 찾아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노는 대신 무거운 학원가방을 매거나, PC방 혹은 집안에 들어가서 컴퓨터 게임과 씨름을 하곤 한다. 그런데 예전엔 그런 풍경이 아니었다. 골목은 왁자지껄하며,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예전 놀이를 통해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들여다보자.
 
▲ 어른들도 놀이 즐겨
1975년이다. 경주 안압지에서 ‘주령구(酒令具)’가 나온다. 일종의 주사위인데, 정사각형이 6면인 6면체 주사위가 아니다. 주령구는 사각형 6개와 육각형 8개로 만들어진 주사위로, 어린이들의 놀잇감은 아니었다. 신라시대 귀족들의 놀이였다. 주령(酒令)은 말 그대로 여럿이 술을 마실 때 술 마시는 방식을 정하는 것으로, 어른들이 술을 마실 때 쓰던 놀이기구였다.
 
▲ 주령구(酒令具)는 1975년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14면체 주사위다. 정사각형 면의 면적은 6.25평방센티미터, 육각형 면의 면적은 6.265평방센티미터로 확률이 거의 1/14로 균등하게 되어 있다. 재질은 참나무다. 각 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어 신라인들의 음주 습관의 풍류를 보여주고 있다. 출토된 진품은 유물 보존 처리도중 불타버렸고, 복제품만 남아있다. 사진=연합뉴스
주령구의 14개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들어 있다. 술 마실 순번이 돼 주령구를 굴리면 14개면 가운데 1개면이 자신에게 떨어진다. 예를 들면 ‘공영시과(空詠詩過)’라는 게 있는데 이게 걸리면 시를 읊어야 한다. 또 ‘농면공과(弄面孔過)’는 얼굴을 간질여도 참아야 하는 벌칙이었고, ‘삼전일거(三盞一去)’는 술 석 잔을 한 번에 비우는 벌칙이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옛 놀이인 윷놀이의 시원도 읽을 수 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부여’와 관련된 기록이 있고, 여기에 부여의 관직명으로 ‘저가(猪加) 구가(狗加) 우가(牛加) 마가(馬加) 대사(大使)’가 나오는데 윷놀이는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주령구가 어른의 전유물이었다면, 윷놀이는 어른을 포함한 다양한 층이 함께하는 그런 놀이다.

이들 놀이는 규칙을 부여한다. 주령구는 14개의 벌칙이 따르고, 윷놀이는 말을 놓고 그 말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그런 놀이이다. 이런 놀이들은 현대의 ‘보드게임’과 흡사하다. 사라진 놀이 가운데 하나인 ‘쌍륙놀이’도 보드게임을 닮았다. 2개의 주사위를 굴리며 머리싸움을 하는 놀이이다.

종이 말판 위에서 최고의 관직에 누가 먼저 오르는가를 따지는 ‘승경도’도 보드게임의 하나였다. 이 놀이는 지배층이 주로 하던 놀이였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엔 놀이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 중 많이 등장하는 놀이를 꼽으라면 격구와 투호였다. 놀이에 대해 비판적인 임금도 있었으나 성종은 그나마 관대했던 모양이다. <성종실록>을 들여다보자. 성종은 “예전엔 투호를 하는 예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 행하지 않는가. 투호를 희롱하고 놀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기를 구하는 것이다”고 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그런 놀이도 있었지만 집단적인 행동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는 놀이도 있었다. 단오 때 돌을 던지며 노는 ‘척석(擲石)’이라는 놀이가 있다. 상대방을 향해 돌을 던지며 노는 행위인데, 너무 과해 이런 놀이를 중단하도록 하기도 했다.
 
▲ 자연에서 놀잇감을 얻어
어찌 보면 과격한 놀이도 있지만, 예전 놀이는 놀잇감을 직접 만들었다는 점이 지금과는 다르다. 혼자서 하기보다는 어울리는 놀이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제기차기, 자치기, 술래잡기, 땅따먹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등.

이들 놀이는 땅을 기본으로 한다. 많은 예산을 들이지도 않는다. 몸과 정신운동이 복합돼 있다. 제기차기는 다양한 신체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놀이였다. 한발을 쓰기도, 양발을 쓰기도, 한발을 들어 올려서 제기차기도 한다. 치마를 입은 여성들도 제기차기를 할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평범한 놀이가 있을까싶다.

자치기와 땅따먹기, 비석치기 등은 모든 걸 자연에서 얻는다. 자치기는 긴 자와 짧은 자를 얻기 위해 주변에 보이는 나무를 활용한다. 좀 넓은 공터만 있다만 언제 어디서든, 어느 누구와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놀이였다.

땅따먹기는 더 쉽다. 작은 돌만 있으면 가능하다. 남의 땅을 침범해서 자신의 땅을 마음껏 넓힐 수 있다. 사방치기도 돌만 있으면 된다. 공기놀이는 자그마한 둥근 돌 5개만 있으면 가능한 놀이였다.

지금은 다들 추억의 놀이가 됐으나 이들 놀이는 자연이라는 걸 기본으로 삼는다는 점이 지금의 놀이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왜 이런 놀이가 필요할까
예전 놀이는 자연에서 얻는 놀이도 있고, 머리를 써야 하는 놀이도 있었다. 바둑과 장기는 머리를 써야 하는 옛 놀이의 대표 격이다. 그렇다고 돌만 하나 둘 놓으면서 상대방을 이겨야하는 바둑·장기 등의 놀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문자의 발명은 문자를 통해 놀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쉽게 말하면 ‘삼행시’같은 것이며, 전문 용어를 빌리면 ‘아크로스틱(acrostic)’이 된다. 얼마 전 이승만 추모 시 공모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최우수상은 영문시에 돌아갔는데, 시의 맨 앞 글자를 따면 이승만을 비난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런 게 ‘아크로스틱’이다.

글자 첫 글자를 따낸 놀이로 ‘아크로스틱’이 있다면 첫 글자부터 마지막 글자를 뒤집어도 같은 내용이 되도록 하는 그런 형태의 놀이도 있다. 이는 ‘아크로스틱’과 달리 ‘팰린드롬(palindrome)’이라 부른다. 한자로 말을 바꾸면 ‘회문(回文)’이라고 번역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규보의 ‘미인원(美人怨)’이라는 시가 회문의 대표 격이다. ‘장단제앵춘(腸斷啼鶯春)’으로 시작을 해서 ‘춘앵제단장(春鶯啼斷腸)’으로 끝나는 80수의 시다.

머리 아픈 놀이도 잠깐 소개를 했으나 놀이라는 건 우선 신체활동을 필수로 요구한다. 몸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야 놀이의 기본이 되기에 그렇다. 그것도 자신의 곁에 있는 사물을 도구로 활용할 때라야 창의성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그렇지 않고 주어진 놀이재료에만 의존하면 창의적인 놀이 활동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 놀이들은 자연스레 창의성을 바탕에 깔고 만들어지고, 그 바탕 위에 놀이를 해왔다. 그런 창의활동은 문자를 가지고서도 놀이를 즐기는 머리를 쓰는 활동으로도 이어지게 마련이다. 놀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며, 예전 놀이들이 그런 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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