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엘 젬’ 원형경기장①
2세기 로마제국시대 올리브유 무역 중심지 ‘엘 젬’
북아프리카 최대 생산지로 엄청난 부 축적해 건축
'콜로세움'과 똑같은 외관 마치 로마 온 듯 착각도

▲ 엘 젬 원형경기장 외벽
▲ 경기장 내부에서 마을 쪽을 향해 바라 본 모습.
▲ 경기장 내부 통로
5월의 튀니지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이제 진짜 봄이구나 싶더니 다음 날은 비바람이 쌩쌩 불면서 춥고, 다음날은 30도를 오르내리며 덥다. 옷을 그날그날 날씨에 맞게 입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기 딱 좋다. 제주의 5월과도 비슷하다. 이 나라에는 전기매트나 전기장판이 없다. 튀니지 친구에게 전기매트를 보여주었더니 아주 신기해 한다.
 
▲하루가 8시부터 시작되는 튀니지

‘엘 젬(El Djem)’은 아내가 잠시 튀니지에 왔을 때 아내를 위해 가게 되었다. 가는 방법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더니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스팍스(Sfax) 행 급행열차가 ‘엘 젬’을 경유한다고 했다.
 
아침 기차를 타기 위해 튀니지의 모든 기차의 시작점이자 시내 중심가에 있는 바르셀로나 기차역으로 가는데 교통체증으로 오전 8시 ‘스팍스’ 행 급행열차를 놓쳐버렸다. 튀니지에서는 모든 일상이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내가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다음 차편을 알아보니 너무 늦은 시간에 있고, 돌아오는 기차는 한밤중이다. 내가 아주 곤란한 표정을 지으니 매표원이 ‘몽세프 베이’ 르와지 역으로 가라고 알려줬다. ‘몽세프 베이’ 르와지 역은 바르셀로나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튀니스는 목적지마다 르와지(정원이 8명인 소형버스) 탑승 역이 다르다. 북서부 지역은 밥 사둔 역(Station de Bab Sadoun), 남부 지역은 몽세프 베이 역(Station de Moncef bay), 캡봉 지역 및 남서부 지역은 밥 알리우아 역(Station de Bab Alioua)에서 타야 한다.
 
▲수도 튀니스와 3시간 떨어진 ‘엘 젬’으로

어렵게 ‘엘 젬’행 르와지를 타고 버스기사에게 ‘엘 젬’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젬’에 간다고 했다. 나는 ‘젬’이 아니라 ‘엘 젬’에 가느냐고 다시 물어 봤더니 맞다 면서 ‘젬’에 간다고 한다. 정원 8명이 다 탈 때까지 1시간 남짓 기다리면서 타는 손님에게 이 르와지가 ‘엘 젬’에 가는 버스가 맞는지 물어 봤더니 역시 ‘젬’에 간다고 한다. 그래서 “당신도 ‘엘 젬’에 가느냐?”고 물어 봤더니 자기는 ‘젬’ 다음 마을까지 간다고 한다. 탑승 정원 8명이 차자 르와지는 출발하였고, 나는 이 버스가 다른 지역으로 갈까봐 마음이 안절부절못했다. 수도인 튀니스에서 ‘엘 젬’까지는 약 3시간정도 소요된다. 르와지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나는 계속 도로의 이정표만 봤다. 2시간 정도 달리니 ‘엘 젬’이라고 표시된 이정표가 보였다. 그제서야 안심이 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엘 젬(El Djem)’의 ‘EL’은 스페인어 정관사였다. 내가 사는 곳이 ‘바르도(EL BARDO)’ 지만 ‘엘 바르도’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젬’이라고 한 것이다. 이곳 지명이 아랍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가 혼합되어 사용하고 있는데 한동안 이곳을 지배했던 나라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시름을 놓으니 졸음이 엄습해 온다. 사실 나는 ‘엘 젬’에 가는 날까지 분기보고서를 제출해야했기 때문에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꼬박 밤을 새우는 강행군을 한 상태였다.
 
잠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갑자기 버스가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는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운전기사의 졸음으로 버스가 차선을 이탈한 것이다. 그때부터 잠은 사라지면서 이제는 사고가 나지 않길 걱정하기 시작했다. 르와지는 8명이 정원인 소형버스이기 때문에 보험가입이 만무했다. 정해진 버스시간이 없기 때문에 빨리 가서 손님을 태우고 오는 것이 이익이라고 한다.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니 말은 안하지만 역시 겁이 나서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때 멀리서 ‘엘 젬’이 보였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운전기사가 이 길로 걸어가면 엘 젬 원형경기장이 나온다면서 우리를 내려놓고서는 다시 출발한다.
 
시내에 들어서니 조그마한 시골마을 풍경이 정겹게 느껴졌다. 조금 걸어가니 역이 나오고 역에서 원형경기장까지는 5분밖에 안 걸렸다. 드디어 ‘엘 젬’ 입구에 섰다. 매표소에 현지 체류 증을 보여주었더니 나는 무료입장이고 아내는 2디나르를 할인을 해준다(1인당 입장료 10디나르, 한국 돈으로 7,000원).
 
▲기둥, 벽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예술

‘엘 젬’의 고대명은 티스드루스(Thysdrus)이다. 2세기 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티스드루스는 당시 올리브유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지금은 조그만 농촌 마을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원형경기장이 크게 지어진 것은 과거 이곳이 북아프리카의 최대 올리브 생산지로 엄청난 경제적인 부를 누렸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내 시야에 원형경기장이 보이자마자 내가 로마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로마에서 본 콜로세움과 똑 같은 모습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타원형의 경기장 바닥과 4층 규모의 아치 기둥들 그리고 사라진 서쪽 벽이 눈에 들어온다. 원형경기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다듬어진 돌 하나, 벽하나, 기둥하나가 건축예술의 극치다. <글 사진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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