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엘 젬’ 원형경기장 ②
10층 높이 최대 6만명까지 수용 ‘아프리카의 콜로세움’
향락적 경기 열리던 곳 베르베르 족 마지막 요새이기도
1979년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인류의 유산

▲ '엘 젬' 원형경기장
▲ '엘 젬'행 르와지 역
경기장의 외관은 콜로세움과 비슷한 4층 규모였다. 로마에 있는 콜로세움이 도리아식(지상층), 이오니아식(두번째층), 코린트식(세번째층) 등으로 돼 있다면, ‘엘 젬’의 원형경기장은 세 개 층 모두 코린트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세계에는 로마가 지은 원형경기장 중 보존이 잘 된 곳이 10개가 있다고 한다. 그중 5개가 튀니지에 있으며 3번째로 큰 원형경기장이 이곳 ‘엘 젬’이다.
 
▲'아프리카의 콜로세움'
‘엘 젬’의 원형경기장은 타원형태로 길이 138m에 폭 114m이다. 높이는 36m로  10층 건물의 높이에 해당한다. 3만 5000명에서 최대 6만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그래서 ‘엘 젬’의 원형경기장을 ‘아프리카의 콜로세움’이라 부른다.
 
스탠드에서 반대편을 보니 관람하는 사람들이 조그마하게 보인다. 1층에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나 위험하지는 않다. 황제와 귀족들이 쓰던 좌석은 눈이 부실 만큼 대리석으로 아름답고 정교하게 지어졌다. 이 경기장의 특징은 출입구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몇 분이 안 걸리도록 설계가 되었다. 그 통로 또한 미의 극치이다.  경기장은 언덕의 사면이 아니라 평지에 지어졌다. 복잡한 아치 시스템으로 가장 뛰어나게 건축된 로마 원형경기장의 본보기 중 하나다.
 
이 원형경기장에서는 검투사 경기를 비롯해 전차 경주가 열렸다. 이런 향락적 경기는 로마 제국의 쇠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몇 세기 동안 아랍 침략자들에 대항한 베르베르 족의 마지막 요새로 사용되었고 다시 여러 왕조의 성과 요새로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대포 공격을 받기도 했다. 17세기에는 튀니지를 지배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터키 민족)이 ‘엘 젬’ 원형경기장에 숨어든 저항세력을 잡기 위해 서쪽 경기장을 무너트렸다고 한다.
 
▲ '엘 젬'원형경기장지하 투기사의 방
▲ 아직도 생생한 검투사들의 숨소리
2000년에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검투사)'는 모두 한 번 쯤 보았을 것이다. 주연을 맡은 러셀 크로우(막시무스 역할)와 검투사들의 명연기가 압권이었다. 이 영화가 바로 이 곳, ‘엘 젬’ 원형경기장에서 촬영됐다.
 
경기장에서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2개의 통로가 나온다. 여기에는 맹수들을 가둔 방, 죄수들의 감옥, 검투사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쇼를 공연할 순서를 기다리던 방과 시체를 버렸던 깊은 우물 등이 있다.
 
그 방들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지하에는 유적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전등 설치가 안 되어 있어서 자연 채광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데다 얼마 전 수스(Sousse)에서 일어난 IS테러의 여파로 관람객들이 더욱 없어서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아내는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다시 경기장 스탠드에 올라가 앉아 있노라니 부와 향락을 위해 경기장을 뒤덮은 수많은 관중의 함성소리와 살기 위해 싸우는 검투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관중들의 외침과 검투사들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엘 젬’ 원형경기장은 1979년 10월 26일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다. 지금도 스탠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이곳에서는 매년 8월에 국제 교향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엘 젬’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다 보니 오후 3시가 훨씬 넘었다. 서둘러 처음 내린 장소에서 르와지를 기다리는데 오질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다 착한 인상을 한 청년에게 튀니스(튀니지의 수도)로 가야하는데 르와지가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여기는 르와지 역이 아니라고 한다. 나의 걱정스런 모습을 봤는지 자기가 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한참을 걸어가니 길가에 대기하고 있는 르와지들이 보인다. 그제 서야 안심이 되긴 하는데 또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튀니스로 가는 르와지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 오느냐고 했더니 자기들도 모른다고 한다. 이곳은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튀니스에서 ‘엘 젬’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르와지가 도착하고, 그 버스가 다시 튀니스로 넘어 간다는 것이다. 내가 ‘엘 젬’에 도착해 내린 곳은 르와지 역이 아니라 내가 탄 르와지가 엘젬을 지나 다른 마을로 가면서 나를 태우고 간 것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머릿속에는 걱정이 말이 아닌데 옆에서 이 르와지가 ‘수스’로 출발하니 얼른 타라고 한다. ‘수스’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그 곳에 가면 튀니스로 가는 르와지가 많다고 한다. 나는 일단 그 말을 믿고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한 ‘수스’행 르와지에 무조건 몸을 실었다.
 
‘수스’는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도시다. 지난 바로도 테러에 이어 38명이나 되는 외국인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좀 겁이 났지만 운전기사를 믿고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1시간을 달리니 큰 도시가 나왔는데 이곳이 ‘수스’라고 한다.
 
오늘 하루에만 몇 번을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참 힘든 ‘엘 젬’행이였다. 그래도 그 웅장함에 다시 가고 싶다. 튀니지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문득 우리 제주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하고 있을까 스스로 반문해 본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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