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6> 튀니스의 메디나(Medina, 구도시)

튀니지의 수도이자 지중해의 주요 항구도시인 ‘튀니스의 메디나(Medina, 구 도시)’는 기원전 2000년에 원주민인 베르베르인에 의해 투네스(Tunes)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4세기부터 도시로 형성되면서 이곳을 지배한 누미디아인과 카르타고의 페니키아인들이 거주했고,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인 1세기에 항만 도시로 다시 재건됐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 
이후 튀니스의 메디나는 439년 게르만계 반달족이 세운 반달왕국의 도시로, 534년에는 비잔틴제국의 도시로, 698년부터는 아랍인들이 이곳을 정복한 후 여러 이슬람 왕조의 수도로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튀니스는 약 1000년간 이 메디나 안에서만 존재 했다고 한다.
 
16세기 초에는 스페인, 1574년부터 오스만 제국, 그리고 1881년부터 튀니지가 독립되는 1956년까지는 프랑스가 지배한 역사 깊은 고대 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에 독일 군에 점령되어 1943년 5월 연합군에게 탈환되는 등 파란 만장한 유럽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으며 지금도 이 구 도시는 완벽하게 보존되어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1979년 이곳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
 
프랑스 풍의 건물들이 즐비해 ‘튀니지의 파리’라 불리는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를 따라 내려 가다보면 메디나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성문이 보인다. 이 성문을 ‘프랑스 문(Porte de France)’ 또는 ‘뱁 하르(바다의 신, Bab Bhar)’라고 한다. 이 문을 가운데 두고 21세기와 6세기의 아랍도시로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
 
▲1841년까지도 노예를 사고팔던 곳
 튀니스의 메디나는 성곽도시이다. 뱁 하르(Bab Bhar)라고 불리는 성문 안을 들어가면 ‘알리 베이(Rue Ali Bey)’길이 나온다. 이 길은 원래 왕궁으로 가는 도로였지만 지금은 좁은 길 양쪽으로 ‘수크(souq, 시장)’가 형성돼 전통문화의 거리가 되었다.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갈수록 늘어선 상점들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전통 복장과 다양한 액세서리 속에서 튀니지의 전통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곳 메디나의 오른쪽으로 뻗은 ‘알리 베이’ 길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곳이 ‘수크 엘 투르크(souk el-Trouk)’이다. 이곳에서는 터키풍의 옷들을 주로 만들어서 판다. 터키풍의 옷은 튀니지 전통의상 중에 하나이다. 그 다음 튀니지의 전통과자인 마카로트(Makrout)를 파는 골목이 나오고 더 위로 올라가면 ‘수크 엘-레파(souk el-Leffa)’가 있는데 이곳에는 양탄자를 판다. 여기서 다른 미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13세기에 세워진 ‘수크 엘-아타린(souk el-Attarine)’이 나온다. 향료 제품을 주로 판다. 이곳에서 수십 종류의 천연 향수를 팔고 있다. 호객 행위로 직접 손과 발에 발라준다.
 
다시 미로를 거슬러 올라가면 터키 풍의 모자를 직접 만들어서 파는 ‘셰시아 수크(Grand Souk des Chechias)’가 나온다. 이곳에서 전통방식으로 제작된 ‘셰시아’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다시 반대편 미로로 내려오면 ‘수크 엘-베르카(souk el-Berka)’와 ‘수크 데 오르페브르(souk des Orfevres)’가 나온다. 귀금속을 세공해 귀금속 제품을 파는 곳으로 아주 약간의 마진만 더해서 판다. 이곳은 항상 결혼예물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부쩍 인다.
 
튀니지 친구가 ‘엘 베르카 수크(Souk el-Berka)’ 지역은 14세기에서 17세기 중반까지 북아프리카 해적들에 납치된 기독교인과 흑인들이 주로 거래되던 노예시장이었다고 한다. 이 노예시장은 1841년에 폐쇄되었지만 영화에서만 보던 노예시장의 현장에 직접 서보니 이곳에서 노예로 거래됐던 사람들이 생각나 마음이 애잔해진다. 여기서 다시 미로로 내려오면 ‘수크 데 팜므(souk des Femmes)’가 나온다. 여성들이 옷 위에 걸치는 스카프인 시프사리(sifsari)를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미로 같은 길
메디나 안에 들어서면 모든 건물들이 모두 한 덩어리처럼 이어져 있다. 길은 어깨를 부딪치며 다닐 정도로 좁으며, 골목길을 잘못 들어섰다가는 나오는 입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미로와 같다. 도시가 이렇게 지어진 이유는 지중해의 덥고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침입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두 번의 여름과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튀니스의 봄, 여름, 가을의 날씨는 제주도와 비슷하지만 비가 드물고 겨울은 제주도보다 따뜻하다. 이곳에서는 길을 유심히 살피면서 다녀야 한다. 생각 없이 돌아다녔다가는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내가 2014년 튀니지에 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인적이 없는 곳에서 헤맨 적이 있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외국인은 이방인이다. 강도를 당할 수도 있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갑자기 겁이 나고 당황해하고 있는데 마음씨 좋은 현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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