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정한 '무복'과 '기부'의 삶
운명이 정한 '무복'과 '기부'의 삶
  • 고상현 기자
  • 승인 2016.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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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부 행복한 제주 <79>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기능보유자 김윤수씨

가난했던 경험에 기부 결심
1980년대 말부터 나눔 펼쳐

장학금·공동모금회 기부 등
이웃돕는 삶 계속 할것 다짐

굿을 한번 하게 되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나눔도 마찬가지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의 기능보유자인 김윤수(70)씨는 자신이 꾸준히 제주도 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무복을 입고 신 내림을 하게 되면 정신없이 신과 인간을 오가게 돼. 무복을 벗지 않은 이상 그것을 멈출 수가 없어. 기부도 마찬가지야. 한번 시작하면 더 많이 하고 싶은 생각뿐이지.”

김씨는 어렸을 적에 가난한 가정 형편에 살아서 제대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 했다. “어머니는 육지로 나가 해녀 일을 하셨고, 아버지는 일하러 제주도 이곳저곳 떠도셨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조, 보리, 콩 등의 농사일을 했어. 가정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결국엔 학비가 없어 고등학교에 가지 못 했지. 그게 참 아쉬움이 남아.”

그러던 중에 김씨에게 무병(무당이 되기 전에 입무자가 앓는 병)이 찾아왔다. 늘 머리가 아프고 피곤해서 병원에도 다녀보고 침도 맞아 봤지만 소용이 없자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대를 이어 심방(무당의 제주어)이 돼야 병이 낫는다”는 큰어머니의 말을 듣고 심방이 됐다. “참 운명이 가혹하다고 생각했어. 가난해서 배를 곯는데 무병까지….”

심방이 되고 나서도 그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나라에서 굿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때 정말 힘들었지. 사람들 눈을 피해 소나무 숲 속에 천막을 치고 살았어. 하루에 밥 한 끼도 못 먹고 그랬지. 아내가 몰래 친정집에 가서 쌀도 얻어오기도 하고….”

1980년에 영등굿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선정되면서 김씨의 삶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돕기 시작했다. “어렵게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주변에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을 보면 돕고 싶었어. 밥 세끼 먹을 수 있게 되니깐 못 사는 사람들도 세 끼는 먹게끔 하고 싶더라고.”

그는 80년대 말부터 가난한 가정형편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제주도 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2003년부터는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문화재청의 ‘생생문화재사업’으로부터 받은 시상금 100만원과 사단법인 붓다 클럽에서 ‘전통문화예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1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내 삶은 운명이 정했다고 생각해. 그래서 지금은 원망 안 해. 무복을 입어서는 아픈 사람 살리고, 무복을 벗어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그것도 푹 빠져서. 이런 인생도 나쁘지 않아. 죽기 전까지 계속 이런 삶을 즐겁게 살다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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