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2
6.공론화의 흐름 ③ 놀이터에 대한 생소한 주장들

197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등지서 인기
진짜 아이들이 흥미를 갖는 것은
태풍에 스러진 나무와 쓰고 버린 싱크대
놀이 속 위험은 삶 속 도전 가능하게 이끌어
 
지난 5월 26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놀이터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놀이터에 대한 ‘생소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순천시 1호 기적의 놀이터 ‘엉뚱발뚱’의 오픈을 기념해 순천시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기적의 놀이터를 순천시에 제안하고 추진한 놀이 전문가 편해문씨를 비롯해 독일 놀이터 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놀이서 생각’의 저자),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 총괄이사 아마노 히데아키, 미국 놀이터 이론가 수전 지 솔로몬(‘놀이의 과학’ 저자) 등 세계 놀이터 전문가들이 발제자로 참석했다. <편집자주>

 
▲ 지난 5월 26일 어린이 놀이터 심포지엄 행사장 입구
▲ 어린이 놀이터 심포지엄에서 귄터 벨치히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놀이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놀이터
 
이날 행사를 위해 독일에서 건너 온 귄터 벨치히(75)는 한국의 어른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이가 이런 것을 좋아할 것이다’라는 착각을 먼저 벗어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벨치히는 “싸우지 말 것, 안전할 것” 등 놀이와 관련해 어른들이 강조하는 것들이 사실은 아이들의 습성을 무시하고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행위하고 말했다. 아이를 들어 올려 그네에 앉혀주는 배려적인 행동도 사실은 폭력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스로 그네에 올라갈 수 없으면 그 아이는 아직 그네를 타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놀이터는 사용 아동의 연령이 아니라 아동의 능력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싸우는 것’과 ‘다소의 위험에 노출되는 일’도 중요하다. 벨치히는 “신체접촉으로 누가 더 힘이 센 지를 겨루고 아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한 의미가 있고, 아이들은 위험을 인식하게 해주어야 위험에 대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벨치히는 “놀이터는 꿈을 꾸는 곳이므로 훈련을 하는 체육시간과는 다르다”고 강조하며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한국에서 놀이를 통해 배우려는 움직임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되물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놀 때 가장 쉬운 길로 가지 않는다. 굳이 담장 같은 장애물을 넘고 높은 곳에 오르고 땅을 파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아이들 놀이의 남다른 특성”이라며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모든 것을 가지고 놀지만 굳이 놀이터로 가는 이유는 그 곳에 다른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강조했다.
 
▲ 일본의 한 모험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나무 사이 줄에 매달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는 것들
 
벨치히는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을 한편에 버려진 폐차에 아이들이 들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이다. 벨치히는 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차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건축가나 놀이터 디자이너들은 엉뚱하게도 자동차 모형을 만들어 놀이터에 내놓는다며 이는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놀이터에는 진짜 장난감이 없다는 쓴 소리도 건넸다. 그는 “한국의 놀이터는 중앙에 비슷비슷한 놀이기구가 하나 들어서 있고 날씨가 더운 계절이 있는데도 기구들이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며 “미국의 디즈니에서나 볼 수 있는 놀이기구들은 좋은 놀이터의 본보기가 아니”라고 조언했다.
 
세계2차대전에 생겨난 모험놀이터
 
36년간 모험놀이터에 관심을 가져온 아마노 히데아끼(58)는 비영리법인을 통해 ‘플레이파크’라는 모험놀이터를 운영하는 단체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모험’놀이터를 놀이터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 어린이 놀이터 심포지엄에서 아마노 히데아키가 일본의 모험놀이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지난 5월 26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순천시 1호 기적의 놀이터 ‘엉뚱발뚱’의 오픈을 기념하는 ‘어린이 놀이터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통역기가 모자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험놀이터(혹은 플레이파크)는 금지나 제약을 없애고 어린이가 다양한 놀이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불을 피우고, 구덩이를 파고, 나무에 오르고, 기지를 만들고, 요리를 하고, 공작하는 활동을 한다. 칼이나 톱, 망치, 삽 등의 도구도 상비돼 있다. 이 곳에서는 팽이치기, 못 빼기, 술래잡기 등 옛날부터 내려오는 놀이 등이 지금도 왕성하게 펼쳐진다.
 
일본에서는 1979년 상설 모험놀이터(도쿄 세타가야의 하네기 공원)가 생겼다. 모험놀이터는 주민들이 ‘도우미’가 돼 운영한다. 세타가야 구(區)가 장소를 제공하고 최소한의 운영자금을 지원한다. ‘플레이 리더’라 불리는 어른이 공원 개방 시간동안 상주한다. 세타가야 구에만 네 군데의 모험놀이터가 있고 일본 전역에는 400여개의 단체가 모험놀이터 만들기에 관여하고 있다.
 
모험놀이터는 대부분 활동단체가 기획하고 주민이 운영을 맡는다. 그 이유는 행정이 운영할 경우 사고에 대한 책임추궁을 면하기 위해 자유로운 놀이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험놀이터의 발상지는 북유럽 덴마크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한 건축가가 아이들은 어른들이 번듯하게 설계해서 만든 놀이터보다 공사현장에서 더 신나게 논다는 것을 발견하고 수도 코펜하겐의 교외에 폐자재를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은 놀이터 ‘엔드랩 폐자재 놀이터’를 개설했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 아이들의 놀이를 돕는 관리인을 두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른들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단순한 기술 몇 가지를 알려줌으로써 아이들의 놀이가 훨씬 폭넓고 다양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이후 모험놀이터에서 ‘플레이 리더’는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부여받아 지금도 유럽에서는 엄연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모험놀이터는 인기
 
예술사학자 수전 지 솔로몬은 놀이터의 설계에 오랫동안 천착해왔다. 그 역시 이날 심포지엄에서 아이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놀이터 설계에 대해 발표하며 필수 요소로 ‘위험’을 강조했다. 
 
수전은 “위험은 부모들에게는 끔찍한 개념이지만 아이들의 건강한 발달에는 필수요소”라며 “위험해 보이는 많은 놀이들은 오히려 매우 경미한 부상으로만 끝난다”고 말했다.
 
수전은 “위험한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치고 기쁨에 겨워 웃는다”며 “놀이터가 어느 정도의 위험한 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때 아이들이 놀이터를 자주 찾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경사도를 25도 이상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높은 지형을 여행할 때와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가파른 지형,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릴 수 있는 급경사로, 천연동굴을 연상시키는 노르웨이 한 유치원의 큐브 등이 그러한 예라고 설명했다.
 
고물도 모험놀이터에서는 좋은 재료가 된다. 낡은 나무, 버려진 싱크대와 같이 평소 만질 수 없는 물체에 아이들은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몇몇 훌륭한 놀이터는 자연재해를 통해 생겨나기도 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도널드&바버러주커 자연탐험지역 관리자들은 2012년 태풍 ‘샌디’가 휩쓸고 지나간 후 아름드리나무 500여 그루가 쓰러지자 나무들의 껍질을 벗긴 뒤 탐험지대에 배치했다. 수풀이 우거지고 모래 구덩이가 파이고 나무가 스산하게 박혀있는 있는 모습은 태풍을 생각나게 했다. 이 곳은 곧 도전과 모험이 있는 놀이공간으로 유명해졌다. 미국에서는 1979년 모험놀이터가 처음 생겨난 이후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네 명의 놀이(터) 전문가들은 모두 한결같이 ‘놀이에서 위험의 이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위험한 놀이가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하고 스스로 경험을 통제함으로써 현실 속의 더 큰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아마노 히데아끼의 말이 인상적이다. ‘어른에게 가치 있는 것만을 아이에게 원하는 것은 아이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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