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7> 라마단

▲ 라마단 기간 저녁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오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 금식이 행해지는데 오후 8시가 되면 낮에 미리 준비해둔 식사를 한다.

이슬람교도들은 매년 한 달 정도 해 뜰 무렵부터 해 질 녘까지 금식을 하는 종교 의식을 벌인다. 이슬람력으로 9번째 달로 '금식'을 하는 달을 라마단(Ramadan)이라 한다. 약 1400년 전 천사 가브리엘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에게 꾸란을 가르친 신성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서기 632년부터 시작됐다. <편집자주>

▲성찰과 금욕의 시기
튀니지에서도 2016년에는 6월 6일부터 라마단(Ramadan)이 시작됐다. 라마단은 최고 종교지도자가 초승달이 육안으로 보일 때를 기점으로 초승달을 관찰한 뒤에 시작하는 날짜를 공표하기 때문에 나라마다 하루 이틀 정도 다르다. 튀니지에서는 다음 달 7월 6일에 라마단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라마단은 기독교의 사순절처럼 내면적 성찰과 금욕의 시기이다. 라마단 기간 중에 무슬림은 동이 틀 무렵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먹거나, 마시거나, 성 행위를 하거나,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한다.

독실한 무슬림들은 침도 삼키지 않고 뱉어낸다. 그러나 모든 무슬림이 꼭 지켜야 하는 절대 의무는 아니다. 12세 이하의 어린아이, 지적장애인, 노약자, 임신부와 수유기 산모, 생리하는 여자, 장거리 여행자, 군인, 단식을 하면 건강이 악화될 수 있는 환자들은 제외된다.

▲ 한적한 대낮 거리의 풍경(왼쪽)과 식사가 허용되는 오후 8시 이후 활기찬 야간의 풍경이 대비된다.

▲새벽 3시부터 오후 8시까지
나는 지난해 라마단을 처음 체험했다. 작년에는 6월 18일부터 시작됐는데 라마단이 무엇이지 전혀 몰랐다. 항상 점심식사를 같이 하던 동료 사미라 선생이 한 달간 점심을 같이 하지 못한다고 해서 알았다. 이 기간  해가 질 때까지는 물도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인지 사미라 선생은 항상 힘이 없어 보였다.

사미라 선생은 퇴근하면 가족들을 위해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서 오후 8시까지 기다렸다가 식사를 마친 후에 새벽 기도를 하기 때문에 하루에 4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 했다. 그래도 마음은 편안하고 즐겁다고 한다. 튀니지에서의 라마단 기간 금식시간은 보통 일출시간인 새벽 3시부터 일몰시간인 오후 8시까지 장장 17시간 이상 행해진다.

나도 라마단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엄청 고생을 했다, 퇴근하고 저녁준비도 제대로 못했다, 당연히 아침과 점심은 먹지도 못했다. 음식 만드는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이웃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저녁 8시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식사 준비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여기서는 저녁 만찬을 위해 낮 시간에 식사를 준비해두었다가 저녁 8시가 되면 가족이나 이웃, 친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덕분에 뱃살 체지방이 쏘옥 빠졌지만 말이다.

라마단 기간 커피숍과 식당은 해가 떨어지는 오후 8시까지 모두 문을 닫는다. 그런데 오늘 퇴근하다가 밖에서 안을 내다 볼 수 없도록 유리창을 신문으로 가리고 영업을 하는 식당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보니 담배 연기가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신기한 장면이라서 몰래 사진을 찍어 두었다. 다음날 동료 튀니지인 직원에게 “라마단 기간인데 영업을 하는 곳이 있다. 식사를 해도 괜찮나요?”하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이슬람 율법에 아픈 사람은 금식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답한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자유스러운 나라 튀니지라서 가능한가 보다.

▲ 라마단때 즐겨먹는 사막유목민 베르베르족의 음식.

▲금식기간에 '특수'라고?
낮에는 의외로 마트나 시장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저녁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라마단 저녁에는 친족들만 아니라 이웃들도 초대하는 것을 좋아 한다. 라마단 하면 '금식'을 하기에 소비도 줄어들 것 같은데 그 반대다. 밤에 많이 먹고 즐기기 때문에 오히려 음식 소비량이 많다. 이때 벌어들인 돈으로 일 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농수산물과 고기값은 물론이고 생필품과 공산품 등 모든 물건이 엄청 팔리는 ‘라마단 특수’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평소에는 조용한 거리의 상가들을 보더라도 라마단 기간에는 야간에 카페와 식당이 엄청난 호황을 누린다.

나도 얼마 전 튀니지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처음 나온 음식은 갓 구워낸 바게트와 바게트를 찍어서 먹을 수 있도록 올리브 오일을 섞은 만든 ‘하리샤’, 다음은 샐러드, 다음은 메인요리, 다음은 과일 등 후식, 마지막에는 커피 등 음료수가 나왔다. 멋도 모르고 먹다보니 나중에 나오는 메인 음식은 배불러서 먹지도 못했다. 아랍가정에 초대 받았을 때에는 여러 번 나눠서 음식이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조금씩 먹는 것이 좋다.

▲라마다에 이어지는 축제들
라마단 기간 모든 관공서는 일찍 끝난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은 물론 일반 영업점도 일찍 문을 닫는다. 때문에 라마단 기간 오후에 일을 본다는 건 아예 포기해야 한다. 나는 작년에 라마단이 끝나는 마지막 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무실에 있다가 나와 보니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도서관 모든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다 보니 얼마 안남은 휴대전화 배터리도 다 소모되어 혼자 있는 공간에서 겁을 먹은 적이 있다. 간신히 좁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나왔다.

라마단이 끝나는 다음날부터 3일 동안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날과 비슷한 축제가 시작된다. ‘이드-알 피트르(Eid-al Fitr)’라고 하는데 어려웠던 한 달간의 금식이 무사히 끝난 것을 축하하고 라마단이 종료됨을 의미하는 무슬림의 휴일이다.

‘이드-알 피트르’가 끝난 두 달 뒤에는 ‘이드-알 아드하(Eid al-Adha)’라는 양을 알라께 바치는 축제가 있다. 이때는 한 가정마다 양을 1마리씩 잡아서 제물로 바쳐야 하는데 공터가 있는 곳이면 우후죽순으로 양시장이 생긴다. 아랍 국가를 여행 할 때는 반드시 라마단 기간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라마단 기간에는 현지인도 이슬람 성지 이외에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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