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니발 장군의 나라, 튀니지의 ‘카르타고’

한니발. 우리나라 교과서에 나오는 큰 인물 100명 중 한명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2권 ‘한니발 전쟁’에도 나오는 카르타고의 명장군이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 이전부터 지중해를 지배했던 해상왕국 카르타고(Carthago)가 튀니지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이 ‘한니발’의 나라가 튀니지다.        <편집자주>
▲ TGM 출발역인 마린역

▲한니발 역으로

요즘처럼 36도를 오르내리는 낮 시간에 튀니지의 기원전 나라 카르타고를 돌아보기란 웬만해선 쉽지 않다. 아내가 튀니지에 방문한 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카르타고를 가기 위해서는 튀니스(튀니지의 수도)와 근교지역을 연결하는 TGM(Traine Grande Metro)을 타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튀니스의 바르도역에서 TGM 출발역인 마린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지상으로만 다니는 메트로를 타고 다시 빠싸지역에서 갈아타야 한다.

빠싸지역에 도착하면 메트로 기관사가 '바로셀로나' 또는 'TGM'이라고 딱 한번 안내방송을 한다. 이때 잘 들어야 한다. 'TGM'하고 안내 방송을 하면 메트로 종점까지 타고가도 되지만 '바로셀로나'라고 하면 바로 내려야 한다. 나는 튀니지국립도서관에 출근할 때 마다 이 노선을 타고 가는데 처음에 빠싸지역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기에 메트로가 고장 난 줄 알고 덩달아 내렸다가 당황한 적이 있다. 우르르 내릴 때는 이 메트로가 TGM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TGM 방향 메트로 종점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걸어가면 TGM 출발역인 마린역이 나온다.

 

▲카르타고의 역사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잠시 한니발역 지역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지금의 한니발역이 있는 곳은 카르타고이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경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국가였다. 오늘날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까지 진출하는 등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264년부터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로마제국과 120여 년 동안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을 벌였다.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카르타고는 멸망하였으며 로마는 이 지역을 600여년간 지배한다.

카르타고를 건국한 디도(Dido) 공주에 대한 건국신화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의 이네이스(Aineis)에 있다. 디도 공주는 엘리사(Elissa) 공주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페니키아인으로 팔레스타인에 있던 티레(Tyre)왕국의 공주였으나 오빠의 욕망 때문에 도망쳐 나와 북아프리카 해안에 카르타고를 건설했다고 나와 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에 사는 사람들을 포에니(Poeni)인으로 불렀으며 로마와의 지중해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한다.

카르타고가 멸망 후 로마는 AD 1세기부터 카르타고 왕궁터인 비르사언덕(Vyrsa hill)에 다시 거대한 로마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지역은 제 2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카르타고 일대는 땅속에 묻혀있는 카르타고 유적과 지상의 로마유적이 공존하고 있다. 이 지역은 13세기 이후 아랍도시로 변하였으며, 지금은 지중해 연안의 최고의 휴양지가 됐다. 유네스코는 여러 민족의 유적이 겹쳐있는 이 지역 전체를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튀니지에서도 사랑받는 한국인

카르타고를 가기 위해서는 ‘한니발역(Hannibal)’에서 내려야 한다. TGM 노선도를 보니 열한번째 역이 ‘한니발역’이다. 역을 지나칠 때 마다 하나 둘 세면서 갔다. 튀니지에서는 안내 방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도 메트로도 마찬가지다.

처음 찾아가는 곳이라 마음 졸이며 역이 나올 때 마다 역 이름을 유심히 살피는 내 행동이 안스러웠던지 한 현지인이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물으며 도와주겠다고 한다. “카르타고”에 간다고 말하자 기차가 도착할 때쯤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반(일본인)?”이냐고 묻는다. 나는 “래 꾸리(아닙니다. 한국인)”라고 답했다. 그러자 갑자기 내게 손을 내밀면서 “나는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 “세상에 여기서 한국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라며 매우 기뻐한다.

 

▲ 안토니우스 공동 목욕탕 토산품점
▲ 안토니우스 공동 목욕탕 (Thermes d'antonin)

▲거대한 목욕탕의 문화

한국인으로의 자긍심을 뒤로 하고 목적지인 한니발역에 내렸다. 마린역에서 한니발역까지는 40여분이 걸렸다.

역에서 제일 가까운 ‘안토니우스 공동 목욕탕 (Thermes d'antonin)’부터 보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10디나르(6000원)를 주고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서 보니 유적지 8곳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 표 한장으로 카르타고 지역에 있는 8군데의 유적을 둘러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로마는 전쟁이 끝난 후 200여 년이 흐른 뒤 이곳에 새로운 카르타고를 세우면서 가장 먼저 건설한 것이 로마 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목욕탕이었다.

146년에 짓기 시작해 162년 완성했다. 이름은, 당시 로마를 다스리던 안토니우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우스 공동목욕탕’이라고 명명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지금의 모습은 대부분 지하에 묻혀있는 것을 발굴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수많은 방들 그리고 냉탕, 온수탕, 증기탕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대규모 코린트 양식 대리석 기둥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15m에 이른다고 한다. 거대한 기둥 군들을 보면서 당시의 엄청난 규모의 목욕탕과 로마인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80km밖에서 물을 끌다

그 당시 안토니목욕탕이 있는 곳은 물이 안 나왔다. 그래서 로마는 목욕탕에서 사용할 물을 이 곳에서 무려 80km나 떨어진 ‘자구안’(물의 신전이 있는)에서부터 거대한 수로를 통해 끌어왔다. 이러한 수로를 수도교라고 한다.

로마가 튀니지에 건설한 도시에는 ‘자구안’에서 시작한 수도교들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로마인들이 80km나 떨어진 지역에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30m 높이로 돌을 쌓아 건설한 수도교는 고대 로마인의 정교한 솜씨를 볼 수 있다. 몇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견고한 건축물이자 예술품이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