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2
8. 성미산 공동체에서 배운다

개발로 사라질 위기 산 지키며 ‘공동체적 삶’ 눈뜬 주민들
공동육아, 공동주택 ‘성미산 공동체’로 탈바꿈
터전이 된 마을에 끊이지 않는 아이들 웃음소리
​놀이중심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도 눈길

성미산에는 오래전부터 날마다 산을 오르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이 마을에 터를 닦고 30년, 40년 이상을 산 주민들이다. 이들은 오랜 친구와 같은 동네 산을 오르며 건강을 찾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박이들이 이렇게 오르내리던 성미산이 배수지 설치로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편집자주>

▲주민들이 지킨 성미산

마을 주민들은 바빠졌다. 성미산 배수지 건설 반대를 위한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성지연)가 만들어졌다. 주민들은 혹시 님비 현상이라는 얘기를 듣지는 않을까 우려도 했다. 하지만 성미산은 마포구에 있는 유일한 자연 숲이라는 점에서 힘을 얻는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성지연이 구성된 건 2001년이었다.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2만 명의 서명을 받아 주민의견을 내고,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하기도 했다. 성미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산상음악회를 개최했더니 마을사람들이 무려 1500명이나 몰려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사업을 밀어붙였다.

성미산을 지켜야겠다는 움직임은 좀 더 확산됐다. 시민단체들이 합류했다. 환경단체와 산악회 등도 대거 합류하면서 ‘성미산 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2003년 1월 8일이었다. 그러나 상수도사업본부는 그 해 1월 29일, 등산객 발길이 뜸한 겨울철에 성미산 정상부에 있는 소나무 2400그루를 단숨에 베어버린다. 이후 대책위원회는 120일 철야로 성미산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용역 깡패’ 투입으로 주민들이 다치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을 기습 면담하기도 했다.

▲주민들을 하나로 엮어준 위기

주민들은 이명박 시장을 기습 면담한 사실을 ‘3·13 대첩’으로 부른다. 대구 지하철 사고로 당시 이명박 시장이 지하철 출퇴근을 할 때였기에 해당 시간대를 노려 이 전 시장을 면담하고, 두툼한 관련 자료를 넘겨줬다. 이 내용은 다음날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후 제대로 된 공청회가 열리면서 성미산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결국은 상수도사업본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상수도사업본부는 2003년 10월 16일 “인근 지역의 배수로로도 수돗물 공급에 지장이 없다”며 사업을 철회한다고 했다.

이후 성미산은 또 다른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배수로 사업을 물리친 주민들이기에 다음 위기는 쉽게 넘기는 노하우(?)도 갖게 됐다. 성미산은 살아나기만 한 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해냈다.

▲개똥이네 책놀이터

성미산 이야기가 좀 길었다. 그런데 성미산 일대 마을을 알려면 이런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이 곳에는 마을기업이 있다. 마을학교도 있다. 언제부터 이 곳은 ‘성미산 공동체’가 됐다. 사람들이 이 곳을 일시적인 거주지가 아니라 평생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주민들이 알게 되면서 많은 계획들이 모아졌다.

이 마을은 공동 육아를 시작으로, 주택을 만드는 일까지 주민들이 함께 관여하고 있다. ‘소행주’라고 불리는 주택은 이 마을을 대변한다. ‘소행주’는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라는 뜻으로, 6호까지 만들어졌다.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웃음을 줄기차게 생산하는 곳을 들렀다. 동네책방인 ‘개똥이네 책놀이터’다. 작은 책방 겸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다. 주인장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를 지내다가 놀이 공부에 흠뻑 빠져 지내는 정영화씨다(사진). 2002년부터 놀이 공부를 했던 그는 아이들이 놀면서 뭔가를 배우겠구나하고 생각했지만, 부모들의 우려에 그의 교육철학을 주변과 공유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뭔가를 배운다. 교사들은 그걸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놀려도 되나?”

▲아이들에겐 놀이가 정말 필요해

그러던 즈음, 정영화 대표와 뜻이 맞는 이들이 ‘놀이와 노래로 자라는 아이들’(놀래?!)을 만들었다. 줄임말 ‘놀래?!’는 ‘놀아볼래?’라고 물어보는 뜻과, ‘마음껏 놀아보자!’라는 느낌을 동시에 담고 있다.

놀이공부를 해온 정영화 대표는 학교 교육이 줄 수 없는 게 놀이에 있다고 말한다. 놀 때의 몸짓, 언어, 신체발달 활동은 놀아보지 않으면 체득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그렇다.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이렇게 2011년 11월 오픈했다. 상수도사업본부가 성미산 배수지 설치 사업을 철회한 지 대략 8년만이다. 이 사이 정 대표는 임신을 하고, 자신들의 아이들을 마음껏 놀면서 키워보기 위해 어린이집 교사도 접었다고 했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 아이들만 시작해서는 해결될 게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놀이마당을 만들었다. 매달 1회 놀이판을 펼쳐놓고 아이들을 놀게 한다. 지금은 매주 수요일 놀이판을 열고 있다.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일

그렇다고 수요일만 노는 건 아니다.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돌봄도 겸한다. 돌봄엔 놀이가 끼어 있다. 교사들이 계속 아이들을 지켜보는 돌봄의 개념을 탈피, 놀 수 있는 걸 고민하는 게 여기에 있는 교사들과 학생들이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요일별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무료로 놀이에 참여하도록 했죠. 그런데 아이들은 놀이에 참여하는가 싶더니 이내 ‘학원에 가야 된다’며 빠져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고민을 했죠. 고민의 결과는 유료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거였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1만원씩 내라고 했더니 너도나도 신청하는 겁니다.”

놀이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개똥이네 책놀이터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없다는 점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놀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정영화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부모들은 애들이 노는 것에 걱정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나야 하고 이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놀면서 배웁니다. 저는 부모들에게 말합니다. 행여 다칠 수도 있다고요. 그것도 경험이거든요. 그래야 위험을 감지할 줄 알게 돼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을 하면 결국엔 납득하더라고요.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애들을 화분에 있는 화초처럼 키우기를 원하지는 않잖아요.”

▲안전의 양면

물론 다친다는 건 민감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놀이터는 최대한 ‘안전’에 키워드를 맞춘다. 유럽이나 일본과는 다르다. 우리의 놀이터는 미국을 닮았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미국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의 예술사학자인 수전 솔로몬의 얘기를 들으면 왜 미국이 그런 놀이터를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수전 솔로몬은 자신의 저서 ‘놀이의 과학’에서 “영국의 놀이터 개혁을 이끌었던 앨런 남작 부인은 ‘영혼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낫다. 다리는 언제든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미국 부모들은 앨런 남작 부인의 견해를 멀리한다. 어쩌면 의료 선택권을 둘러싼 인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공공의료보험 대상자가 아니면 무상의료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는 유럽이나 영국, 일본 등 공공의료보험 제도가 보편화된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놀이를 얘기하다가 다른 곳으로 빠진 면이 없지 않지만 수전 솔로몬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은 공공의료보험 제도의 문제가 놀이를 제약하는 게 아닐까라는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보험 제도가 잘 정착돼 있는데 정작 부모들은 미국의 부모처럼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러다보니 놀이가 되질 않는다. 정영화 대표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4·16 세월호 이후 자발적으로 자기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이 커졌어요. ‘엄마, 이거 해도 돼요’라고 묻는 게 아니라 직접 할 수 있어야죠. 평평한 곳만 걸어본 아이들보다는 울퉁불퉁한 곳을 걸어본 아이들이 균형을 잘 잡겠죠. 또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그 속에서 아이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권력도 탄생할 수 있지만,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성미산마을은 어찌 보면 도심의 외딴섬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걸 뒤집어보면 도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엔 모두가 성미산마을처럼 놀았는데, 지금은 우리들이 거꾸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제주매일 문정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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