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8-2> 한니발 장군의 나라, 튀니지의 ‘카르타고’

▲ 목욕탕에 물을 대기 위해 건설된 수도교로 높이 30m의 돌로 건설됐다. 당시 로마인들은 수도교를 이용해 80㎞나 떨어진지역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로마인들이 목욕탕에서 쓸 물을 끌어오기 위해 80km밖에서부터 30m 높이로 돌을 쌓아 건설한 수도교를 뒤로 하고 아내와 나는 서둘러 ‘로만빌라(Romanvillas)’로 향했다. 오래전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 멸망 후 AD 1세기부터 카르타고 왕궁터인 비르사언덕(Vyrsa hill)에 다시 거대한 로마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편집자주]

 

▲ 로만빌라(Roman villas).

■2000년 전 개인주택 지금보다 화려

‘로만빌라’는 로마사람들이 살았던 집터다. 현대의 도시구획처럼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구획 정리가 되어 있다. 몇 몇 주택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2000년 전 개인주택이 지금의 개인주택보다도 더 화려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얀 대리석기둥과 바닥에는 과일과 공작새, 나무 잎, 야자수 열매, 포도, 원숭이나 사슴 등이 화려하게 장식된 모자이크가 있다. 이곳에서 당시의 고대 로마사람들의 높은 토목술과 건축술, 아름다운 문화수준을 느낄 수 있다.

곳곳에 목이 없는 대리석 동상들이 서있다. 목이 없는 동상들은 이곳만이 아니라 여러 유적지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전쟁 후에 전리품으로 목만 갖고 갔기 때문이라 한다.

'로만빌라’는 경치가 아주 빼어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로만빌라’에 서서 주위를 관망해보니 지중해가 바로 앞이고 멀리로는 튀니지 수도 튀니스까지 다 보인다. 이 지역은 경치가 좋아 그런지 튀니지의 대통령궁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이 있다. 면적이 넓은 고급저택도 즐비하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 로마원형극장(Roman Theatre).

‘로마빌리지’를 나와 인근에 있는 로마원형극장(Roman Theatre)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로마원형극장은 기원후 2세기에 북아프리카 지역 최대 규모로 건축되었으나, 5세기 중엽 반달족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근대에 이르러 수차례 복원되면서 현재는 매년 8월에는 카르타고 국제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다시 길을 따라 카르타고국립박물관으로 향하는데 도저히 찾을 수 가 없다. 세상에 도로에는 안내판도 없다. 걷기가 힘든 날씨다. 땀은 비오듯 흘러내린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없다. 아내는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돌아가자고 한다. 길을 찾아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행인이 있어 카르타고박물관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그쪽 방향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면서 안내를 해준다. 기진맥진하며 한참을 따라 걸어갔더니 언덕 위에 십자가가 박힌 건물 지붕이 보였다. 아내는 “아니, 아랍국가에 교회가 있네요”라고 한다.

길을 안내해 주던 튀니지인은 보이는 곳이 카르타고의 왕궁터인 비르사 언덕(Vyrsa hill)이라며 그곳에 카르타고국립박물관이 있다고 말했다. 고마운 인사를 뒤로 한 채 간신히 힘을 내어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니 넓은 주차장에 차들은 없고 자전거 동호인들만 모여 있다.

너무 더워서 관광객들도 없는 모양이다.

▲ 세인트루이스 성당.

■루이 9세 전사 기념해 성당 짓다

교회로 보이던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은 세인트 루이스 성당(Cathedrale Saint-Louis)이었다. 1270년 프랑스 루이 9세가 제8차 십자군을 이끌고 튀니지에 진군하던 중 전염병으로 이곳에서 사망했다.

왕 루이 9세는 1297년 성인으로 추증되었고, 가톨릭교회

에서 성인으로 꼽는 유일한 프랑스 왕이되었다. 성스럽다는 의미에서 세인트 루이스(saint Louis)라고도 불린다. 그 후 프랑스는 튀니지를 지배하던 1892년에 왕의 전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고딕식으로 세인트 루이스 성당을 건립했다.

안에는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비르사언덕(Vyrsa hill)의 폐허에는 주춧돌과 돌기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카르타고의 도시의 잔해다. 이곳을 더 발굴을 하려고 해도 지상에는 로마의 유적이 있기 때문에 발굴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옛날 그것도 겨울에 코끼리 군단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지금의 스페인을 지나 그 험한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까지 위협한 한니발 장군의 나라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개무량하다. 폐허 속에는 고대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기독교 회당도 같이 있다. 카르타고는 3세기에 고대 기독교의 아프리카 중심지였다. 나는 그 자취를 카르타고의 역사와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저멀리 기원 전 카르타고인들이 배를 타고 지중해를 지배했던 고대 페니키아 항구도 보인다.

■유럽 보물 간직한 카르타고 박물관

국립카르타고박물관은 세인트 루이스성당 바로 옆에 있다. 매표소 입구에서 안토니오목욕탕에서 산 입장권을 보여 주었더니 표에 체크를 해준다.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지만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될 정도로 다양한 로마시대의 조각상과 모자이크, 카르타고의 시대의 묘석과 석관, 고대 기독교와 비잔틴 시대의 유물, 아랍시대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기원전 3~4세기 남녀 사제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는 방 앞 양쪽 벽에는 헬레니즘 부조 여신상이 붙어있는데 왼쪽은 농업의 여신 미네르바상이고 오른쪽은 자애와 치료의 여신 세레스상이 서있다. 곡선이 너무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보니 마침 택시가 보인다. 너무 더워서 더 이상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카르타고의 유적을 모두 구경하려면 족히 2일은 다녀야 할 것 같다. 나머지 유적들을 보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튀니스로돌아왔다.

튀니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국가이면서도 지중해에 있는 국가다. 튀니지 위치를 좀 더 쉽게 말하면 실제 프랑스 파리와는 비행기로 두 시간, 이탈리아 로마와는 5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튀니지는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고대 카르타고를 비롯해 로마제국, 반달왕국,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 등이 지배한 3000여년의 튀니지 아랍인의 국가이면서도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간직한 문화로 인해 유럽인듯 아닌 듯 여느 아프리카와는 다른 색채를 갖는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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