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보통 제주인의 삶-지금,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 김품창 作 ‘가족-우리들의 이야기’ (1999)

사람들이 일 하기가 싫어졌다고 말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오르면서 ‘억’ 단위가 쉽게 입에 붙자 고작 일백 수십만 원의 급여가 하찮게 보이기 시작했단다. 도로에 외제차가 많아지면서 자동차 보험료 대물 보상액을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렸다는 사람도 있다. 모이면 사는 동네를 묻고, 모두가 돈 얘기만 한다. 사람과 자본,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근간으로 한다는 ‘제주국제자유도시’(2002), 행정구역단위 중 가장 크고 특별한 권한을 가졌다는 ‘제주특별자치도’(2006). 제주는 특별해졌는데 우리는 쓸쓸해졌다. 그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51세 법인 택시기사
김상준(가명)씨는 조금 전 서사로의 박 씨 집 앞에서 차를 넘겨받았다. 돈 가방을 ‘다시방’에 넣고 벨트를 매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라디오에선 어김없이 여자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새벽 4시, 거리는 조용하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는 사람도 아직은 잘 시간이다. 아무리 늦게 자는 사람도 잠이 들 시간이다. 남들은 왜 이 어중간한 시간에 교대를 하냐 하지만 김씨는 고요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이 좋다. 라디오 속 이런 저런 사연을 듣고 있으면 꼭 우리 딸 같은 취업준비생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면 왠지 가슴 저 밑바닥에서 힘이 솟는 것 같다.

김씨는 법인택시 기사다. 처음에는 앞 차 보랴 손님 찾으랴 눈이 빠질 것 같고 돈은 안 되고 이 일도 곧 접겠구나 했는데 하다 보니 5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

김씨는 격일제로 근무한다. 늦은 새벽, 아니 이른 새벽, 앞 운전자 박 씨에게서 차를 넘겨받으면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하루를 꼬박 운전하고 다음 날을 쉰다. 보름에 한 번 돌아오는 휴차 일을 더하면 한 달에 13일 가량만 일하는 셈이지만 점심시간과 낮잠 시간 4시간을 빼면 대략 하루에 18시간에서 20시간 가까이 운전대를 잡는 강행군이다.

그래도 벌이는 빠듯하다. 하루 20만원 안짝을 손에 쥐고 가스 값 5~6만원과 사납금 12만원을 내면 가져가는 건 2~3만원이다. 여기에 사납금을 완납했을 때 회사에서 주는 기본급과 가스보조금을 더해 90여만 원을 합하면 한 달 급여는 160만원 안팎이다. 아내가 맞벌이를 해주지 않는다면 당최 가정이 운영되지 않을 금액이다.

▲ 김품창 作 ‘시장 사람들’ (2001)

사실 딸아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아내와 김씨는 집을 곧 장만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버지가 과수원을 팔면서 받은 돈을 주기로 했고 적금에 대출을 끼면 지은 지 몇 년 된 깔끔한 빌라 정도는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던 차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고 결국은 돌아가셨지만 서울 병원을 오가는 사이 제주도 아파트 값이 폭등했다. 노형에 뜨란채아파트가 생긴 것을 시작으로 노형과 연동, 외도에 대단지 아파트가 계속 들어섰고 이도동과 아라동으로 도심지가 넓어졌다. 사람들은 모이면 집 얘기뿐이다.

아내와 김씨는 월 300만원 남짓을 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딸에게 60만원을 보내고 보험금 30만원을 내고 공과금, 식비, 자동차 세금, 휴대전화비, 경조사비 등 90만원을 빼면 아끼고 아껴야 100만원이 남는데 얼마 전 낡은 차를 바꾸면서 매월 35만원씩 할부가 들어가고 있다. 아끼고 아껴 한 달에 50만원을 저금해서 언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언젠가는 나도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늙은 부모에게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식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

▲50세 옷가게 점원
진희주씨(가명)는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에 있는 한 여성의류 매장에서 10여 년 넘게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서 일을 시작했다. 오전 10시에 가게 문을 열어 청소하고 오후 10시까지 손님들을 상대한다. 한 달에 이틀 쉬고 손에 쥐는 월급은 140만원이다.

현금을 더 받으려고 4대 보험도 마다한 진 씨지만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딸에게 방값을 보내고 보험금, 공과금, 경조사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 진씨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며 “물론 먹을 수는 있지만 먹고 나서 여러 번 후회한 경험이 있어 지금은 외식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낮은 급여보다 정작 진 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진상’ 손님들이다. 진씨는 “옷을 사 가서 입고 다니다가 막무가내로 바꿔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하면 욕을 하거나 한참이나 나이 어린 사람이 담배를 사 오라고 하기도 한다”며 “그럴 때마다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진 씨도 다른 서비스업 종사자들처럼 ‘감정노동’을 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가정 형편상 장기간 일할 수밖에 상황이다.

진씨는 일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어도 하소연할 때가 없다. 진씨는 “자식들도 집에 없어서 집에는 남편과 둘뿐인데 남편도 일하고 들어오면 힘든지 그냥 잠을 자거나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본다”며 “친구들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해도 다들 바빠서 만나지도 못 한다”고 토로했다.      

열악한 근무환경 외에도 진 씨가 참아야 하는 것은 발의 고통이다. 오랜 시간 하이힐을 신고 일을 하면서 발의 형태가 변한 것이다. 걸을 때마다 심한 고통이 찾아온다. 진씨는 “옷 가게에서는 꼭 하이힐만 신어야 한다. 10년 넘게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다보니 무지외반증이 생겼다”며 “얼마 전 병원에 갔지만 큰 수술을 해도 못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병원에서 그냥 나왔다”고 전했다.

10평 남짓한, 백열등이 작열하는 가게 안에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진씨는 가게 쇼윈도 너머로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한 숨을 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가족 생각하면서 이 모든 걸 참아요.”

▲28세 서울 사는 취업준비생
저녁 10시, 김정현(가명) 양은 공덕역에서 방금 집이 있는 쌍문 역에 도착했다. 20개의 역을 건넜다. 평일에는 풀이 죽거나 화가 나있는 것 같던 사람들도 주말에만은 생기를 띤다. 김양은 그런 주말에만 일을 한다.

▲ 김품창 作 ‘생활 이야기’ (1999)

4년 전 제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왔다. 서울에는 학원이 많으니 아무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데 좋을 것 같았다. 정말 서울에는 입시 학원이 많았다. 강사진들은 유능해보였고 서점들은 광활했다. 처음에는 2~3년 안에는 붙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양은 경기도와 제주지역 시험에 모두 응시했다. 그런데 곧 끝날 것 같은 시험 준비기간은 길어졌다.

처음에는 빠듯한 살림이지만 딸내미 하나 번듯한 직장은 갖게 해주겠다고 김 양의 서울 행을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도 이제는 안부만 묻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김양은 3년 전부터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는 노량진의 한 공무원학원에서 월 35만원을 받고 총무를 했었다. 학원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간단한 숙식처를 제공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루 네 시간만 일하면 됐다. 하지만 다른 반 학생들이 방석을 들고 다니며 공부할 때 홍보 전단지를 들고 육교 앞에서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손에 구태여 전단지 한 장을 쥐어주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5개월쯤 하다 그만뒀다. 지금은 공덕역의 한 작은 서점에서 주말에만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 6만6000원, 한 달을 일하고 손에 쥐는 60여만 원으로 생활비를 댄다.

요즘은 가만히 앉아 내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 무섭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만사형통일줄 알았다. 나름 사범대학에 들어갔고 아빠는 김 양이 마치 선생님이라고 된 듯 합격소식을 들은 그날 저녁 뜨끈뜨끈한 순대를 사오셨다. 지난 설에는 엄마가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김 양의 한 달 방값은 45만원이다. 변기와 세면대가 붙어있고, 현관 폭은 겨우 한 보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이지만 서울의 어느 단칸방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달에 꼬박꼬박 45만원이 들어간다.

밤 10시, 흔들리는 전철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승률은 얼마나 될까. 엄마 아빠가 택시 안에서, 손님들 앞에서 힘들게 벌어 내게 부치는 그 돈은 정말 ‘적금(積金)’이 될 수 있을까.’

▲74세 홀로 사는 할아버지
김진봉(가명) 할아버지는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한 여관의 6㎡ 방에 살며 월 18만원을 낸다. 지난 2년간 인근 여관과 고시원 다섯 곳을 거쳐 온 가운데 만난 가장 싼 방이다. 여관 거주자 15여명이 샤워기 한 대, 변기 한 대, 냉장고 한 대, 7kg짜리 세탁기를 공용으로 이용한다. 3㎡도 안 되는 화장실 한 편에 설치된 단 하나뿐인 샤워기는 오늘도 물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다.
 
김 할아버지의 두 평이 채 되지 않는 방에는 전기장판과 오래된 텔레비전, 선풍기, 가스레인지 그리고 겨울 옷, 여름옷이 한 데 걸려있는 행거가 전부다. 김 할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아들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6년 전부터 따로 나와서 살았다. 4년 전에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홀몸이다. 김 할아버지는 “아들이 같이 살자고는 하는데 걔네 형편을 알아. 내가 여기서 그냥 살면 되지”라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어렵게 살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아니다. 아들이 돈을 벌고 있어서 수급 대상에서 탈락했다. 현재 생활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인근 주민센터에서 마련해준 공공근로 일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아서 일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동네 클린하우스 청소라도 해서 돈을 벌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김 할아버지는 오전 내내 일해서 주민센터로부터 50만원을 받는다.

▲ 김품창 作 ‘제주 이야기’ (2001)

낮 12시. 김 할아버지는 공공근로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여관에 왔다. 공동 냉장고에서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반찬통을 꺼내 들고 방에 들어간다. 반찬은 김치와 시금치 무침이 전부. 김 할아버지는 밥통에서 누렇게 변해버린 밥을 그릇에 퍼서 먹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은 김 할아버지는 여관 앞에 세워둔 리어카를 끌고 동네 클린하우스에 버려진 폐지나 고물 등을 줍는다. 점심을 먹고 오후 6시까지 폐지를 주워오면 한 달에 평균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주위가 어두워질 때쯤 김 할아버지는 여관에 들어온다. 비좁은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나서 비좁은 방에 비로소 몸을 뉜다. 그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들기 전까지 멍하니 바라본다. 김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틀어놔야 잠이 잘 와. 안 그러면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어서 많이 힘들거든. 자기 전에 꼭 텔레비전을 켜 놔”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의 어두운 방에는 텔레비전의 불빛과 소리만이 가득하다.

 

“급여 낮고 집값 올라 미래가 두렵다”

도민 60% 월급 200만원 미만
50.2% 고용 형태 불안정
장년층 45% “노후준비 못해”
주택가 상승률 43.7% 전국1위

본 지는 창간 17주년을 맞아 보통 제주사람들의 삶을 취재했다. 제주를 살아가는 보통의 흔한 사람들을 찾아 구도심 골목으로, 아파트로, 농촌마을로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래도 제주니까 큰 빈부격차 없이 다들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급여가 낮고, 반면 집값이 크게 올라 언젠가부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공교롭게도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승격된 2006년 이후 제주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단지 아파트가 급증했고 평당 가격이 상승했다. 이주민들이 크게 늘었다. 차도 늘었다. 외제차가 많아졌다. 관광객 수도 증가했다. 각종 커피숍과 빵집, 편의점 등 전국에 망을 둔 프랜차이즈가 동네 골목골목을 차지했다.

도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변화들, 김 씨 가족의 이야기에 담긴 각 가족 구성원들의 사연과 고민은 통계자료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호남지방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제주도민 일자리인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내 근로자 10명중 4명은 직장에서 받고 있는 임금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 300만원을 받는 비율은 16.6%에 불과했고, 60%에 가까운 근로자들이 200만원 미만의 월평균 임금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자 중 상용근로자는 43.6%,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는 24.4%로 4명 중 1명은 직장이 불안정한 근로자였고, 나머지 25.8%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이거나 무급가족종사자였다.

노년층의 삶도 불안했다.

제주도민 10명 중 7명은 기초노령연금수급자로, 가장 희망하는 노인복지정책은 일자리사업 확충인 것으로 집계됐다.

제주지역 장년층(50~64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5.8%가 적은 소득 등의 문제로 노후준비를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준비를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생활비 등에 쪼들려 준비할 여력이 없거나, 앞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노후생활을 위한 생활비로 최소 195만원(월)을, 적정선은 266만원을 꼽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내 장년층의 월평균 임금을 보면 100만원 미만이 16.5%, 100~200만원 미만이 44.3%로 전체 60.8%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근로희망 연령은 70세였다. 이 가운데 절반(49.9%)은 생계유지를 위해 장래 근로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계유지를 위한 노년기 일자리 마련에 제주도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녀의 취업 희망 일자리에 대해서는 부모의 눈높이와 자녀 능력 간 괴리가 있었다. 도내 장년층이 희망하는 자녀일자리는 공무원이 45.6%로 가장 많았다. 이 조사는 지난해 7~8월 제주 전 지역에 거주하는 5400가구 총 906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제주지역 집값 폭등에 대한 통계자료도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제도개선 및 토지정책 특별위원회가 국민은행의 자료를 토대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 전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을 파악한 결과 이 기간 제주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43.7%를 기록해 전국 평균(19.6%)을 2배 이상 상회했다. 2010년부터는 서울시보다 상승률이 더 높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외 제주도민들의 흡연율은 2013년 전국 1위를 달렸고, 음주 율은 전국 7위였다. 고령자의 정보 습득 매체는 여전히 방송 매체 한정돼 스마트폰과 인터넷를 활용하는 젊은 층과 대비됐다.

자동차 보유대수(역외세입 차량 제외)는 2012년 27만 546대(가구당 1.17대)에서 2014년 30만 829대(가구당 1.22대)로 2년 새 도로 위에 3만 283대가 늘었다.

문정임 기자
고상현 기자
이미지 제공=동양화가 김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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