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타 지역의 움직임 <1>대전시교육청의 ‘50분 놀기’

▲ 대전 자양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거운 놀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전시교육청 제공
지난해부터 ‘놀이통합교육 프로그램’ 전국에서 첫 도입
대전의 모든 초등학교 의무적으로 노는 시간 확보해야
노는데 참여하는 학생보다 학부모·교사 만족도 더 높아
 
골목에서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찾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됐지만 사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놀이를 배웠다. 최초의 놀이를 들라면 아마도 ‘까꿍 놀이’가 아닐 듯싶다. 어른이 먼저 “까꿍”하며 숨거나 얼굴을 가린다. 잠깐 동안 놀이 주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놀이이다. 잠깐 사라졌다가 등장하면 아기들은 “까르르”하며 웃는다. 까꿍 놀이를 배운 아기들은 이젠 엄마와 아빠를 향해 자신이 터득한 까꿍 놀이를 선보인다.

이런 까꿍 놀이는 좀 더 커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가 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까꿍놀이’나 마찬가지로 놀이의 주체를 잠깐 사라지게 만드는 놀이이다. 이걸 전문가들은 자의식을 형성하는 움직임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연속돼서 나타나지 않고, 필름처럼 끊어진 단편들의 조합이라고 한다. 좀 어려운가? 어쨌든 전문가들은 이런 성향들의 놀이를 컷과 컷을 연결하는 ‘피크노랩시’라고 부른다. <편집자주>
 
▲ 제1회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 한마당에 대전시 학생들이 참가해 즐거운 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대전시교육청 제공
▲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을 찾아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언제 봤던가. 기억이 없다. 했던 기억은 있는데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본 기억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놀지 못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놀도록 팔을 걷어붙인 교육청들이 있다.
 
대전광역시교육청(교육감 설동호)은 놀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교육청 가운데 한곳이다. 설동호 교육감은 지난달 28일 취임 2주년을 결산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대전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놀이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놀이통합교육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하루 50분 이상 놀이시간을 필수로 운영하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대전의 모든 초등학교에 적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의 일과를 들여다보자. 수업이 끝나면 10분을 쉬고, 다시 수업을 시작한다. 수업 중간마다 10분을 주지만, 10분은 놀이를 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학생들은 10분 사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새로 나온 게임을 친구들이랑 얘기하면 끝이다.
 
하지만 50분 이상 놀이시간을 주면서 달라졌다. 놀이시간은 정규수업 전에 20분, 점심시간 뒤 30분, 3교시 수업을 마친 뒤 30분 등 학교 실정에 맞게 지정하고 있다. 운동장이 넉넉한 학교는 전교생이 정해진 요일에 일제히 실외놀이를 하기도 한다.
놀이에 대한 고민은 수업도 변하게 만들었다. 아예 2개 교시를 묶어 블록수업을 하고, 쉴 시간을 확보하는 학교도 생겨났다. 이런 활동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50분 놀이시간 확보를 제시하자 일부 학교에서 반발하기도 했으나 결과는 ‘좋다’였다.
 
▲ 대전 용전초등학교에서 놀이 한마당 시간이 펼쳐지고 있다. 대전시교육청 제공
▲놀이시간 주었더니 학생보다 교사가 더 만족
지난해 7월 대전시교육청이 놀이통합교육 운영의 공감대 형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교육주체 2만5050명을 대상으로 했다. 놀이시간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학생 89.3%, 학부모 93.1%, 교사 94.0%였다. 놀이 활동을 확보하면서 ‘놀이로 학교생활이 더 즐겁다’고 답한 비율은 학생 87.9%, 학부모 93.9%, 교사 95.7%였다. 설문결과는 학생도 즐겁지만 교사의 만족도가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50분을 확보하도록 하자 노는 시간엔 교실 바닥이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후다닥 신발을 신고 바깥으로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대전자양초등학교인 경우는 학교 내에 ‘전통놀이 존(zone)’을 만들기도 했다. 쉬는 시간 10분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전 자양초등학교는 또, 학교 건물과 건물사이의 남는 공간에 전래놀이 도안을 그려놓고 창의적 체험활동을 가능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놀지 못해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도 많았으나 이젠 스스로 놀이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아이로 변하고 있다. 더욱이 놀이에 대한 추억은 어른 세대와의 대화 창구도 된다. 아이들이 집에 간 뒤 학교에서 놀았던 전래놀이를 설명하면, 부모들이 추억을 되살리며 신나게 떠든다고 한다.
 
대전 노은초등학교는 운동장 놀이를 아침자습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바깥에 팔방놀이와 달팽이놀이, 8자놀이, 땅콩놀이 등 다양한 놀이 선을 그어 놓고 있기에, 학생들은 운동장에만 오면 각종 놀이와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이 학교는 놀잇감 대여소를 만들어 각종 놀잇감을 빌려주기도 한다.
 
지난해 설문 결과는 학생보다 학부모나 교사들의 반응이 더 좋았다고 앞서 설명했다. 그 이유는 뭘까. 그건 학생을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학생들이 변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놀이의 확산으로 학생들의 행복감이 높아진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 있다.
 
▲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 참여 필수
그런데 왜 대전시교육청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놀이통합교육’이라는 틀을 들고 왔을까. 대전시교육청이 내거는 교육은 ‘행복’이다. 대전시교육청의 캐치프레이즈는 ‘행복의 학교, 희망의 대전교육’이다. 놀이통합교육은 바로 ‘아이들의 행복’ 회복에 있다.
 
대전시교육청이 놀이교육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어린이 행복도를 보이는 것과 맞물린다.
 
대전시교육청은 놀이통합교육을 하면서 “놀 권리와 자유의 결핍 문제를 국가적 위험요소로 받아들이고, 바람직한 아동교육을 위해 아동 놀이의 정책적 접근과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뺏는 것 자체가 ‘자유의 결핍’이라는 생각이며, 놀이가 곧 아동교육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물임을 일깨운다.
 
놀이통합교육은 하루 50분 이상 놀이시간 필수 운영을 골자로 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도록 ‘자유와 자율’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동아리를 기반으로 한 활동만 있는 건 아니다. 행정적인 건 학교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대전 노은초의 사례에서 보듯 놀잇감 대여소를 학교에서 운영하거나, 놀이와 관련된 교과 및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건 학교의 몫이다.
 
대전시교육청은 하루 50분을 각 급 학교에 던져놓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다. 놀이통합교육 교사연수를 진행하고, 정책연구팀 운영, 놀이통합교육 선도학교 및 연구학교 운영, 장학자료 개발 등으로 일선학교의 놀이통합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대전시교육청은 교육청과 학교, 학생의 연결고리에 하나를 더 붙이고 있다. 그건 지역사회 협력 기반 마련이다. 학부모 자원을 활용하고, 지역 사회와 연계된 프로그램도 모색하고 있다. 여기엔 물론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사회 인재들의 교육기부도 들어 있다. 대전시교육청은 이걸 ‘놀이통합교육 3개 모형’으로 일컫는다.
 
대전시교육청은 지난해 전국 첫 놀이통합교육 선언에 이어, 올해는 제1회 대한민국 어린이 놀이한마당도 열었다. 이것도 전국 최초이다. 지난 5월 4일과 5일 이틀간 전국의 유치원생과 초등생, 시민 등 12만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노는 건 어릴 때 익숙해야 한다. 잘 놀아야 창의력도 생긴다. ‘노는 인간’을 말하는 호모 루덴스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잘 놀아야 행복하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대전시교육청이 잘 일깨워주고 있다. <제주매일 문정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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