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9> 신전 토펫(Tophet)

7월 들어서 튀니지의 온도는 지방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연일 36도에서 45도를 오르내리고 있다. ‘불볕더위’다. 지금부터 9월까지는 낮에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튀니지만이 아니라 지중해 연안 국가는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튀니지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이 통하는 긴팔셔츠와 선글라스, 모자, 썬크림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편집자 주]

▲지중해 적도 태양이 작열하는 곳

튀니지 사람들은 외출할 때 어린아이들을 뺀 대부분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닌다. 멋을 내기보다는 눈을 보호하기위해서다.

여자인 경우는 양산을 준비해오면 좋으나 양산을 쓰고 다니면 튀니지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거린다. 심지어 어린애들은 신기해하며 따라다닌다. 휴양도시에 사는 튀니지 사람들 이외에는 양산이 뭔지 모른다. 아랍국가 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여름에 더위를 막기 위해 우산을 쓰고 다닌다는 정도는 알지만 이곳에서는 우산은 비가 올 때만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대신 튀니지 여성들은 여름철에는 겨울에도 사용하지 않던 팔꿈치까지 올라가는 긴 장갑을 착용하고 다닌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한여름에 긴 장갑을 끼고 다니는 아랍인들이 보이면 그 나라 문화를 존중해 줘야 한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질상 한여름에 자유여행을 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할 나라다. 반면 이맘때 튀니지에는 영국,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스위스 등 북서부 유럽에서 일광욕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이 엄청 몰려든다. 그 이유는 북서부 유럽 지역은 연중 비가 내려서 일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신전 토펫.

▲토펫 신전을 가다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 작년 여름 카르타고를 탐방하다가 너무 더위서 포기했던 카르타고 왕국의 토펫(Tophet)신전과 지중해를 지배했던 카르타고 왕국의 항구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튀니지 수도 튀니스의 마린역에서 TGM이라고 불리는 교외선 기차를 타야 하는데 마린역은 작년 11월25일 대통령 경호원 수송버스를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으로 13명이 사망한 지점에서 가까운 곳이라 살짝 망설여지긴 했다.

지도를 보니 토펫에 가기 위해서는 카르타지 살람보역(Carthage Salammbo)에서 내려야 하고 카르타지 항구는 카르타지 비르사역에서 내려야한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기차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시디부사이드 방향으로 락(Lac, 호수)을 지나 8번째 역인 ‘카르타지 살람보역’에서 무작정 내렸다. 내리고보니 동서남북도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지나가는 분에게 “윈 토펫”(토펫이 어디에 있는지요하고 물어 봤는데 잘 모른다. 토펫으로 가는 길을 알기 위해 역무원에게 찾아가서 “토펫을 보고 싶어서왔는데 어떻게 가나요” 하고 물었더니 “꼬레 일 제노비아(남한)”하면서 나를 매우 반갑게 맞이해 준다. 깜짝 놀라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했더니 “당신 가슴에 달고 있는 국기를 보고 알았다”면서 자기 아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어서 코리아 국기를 안다고 한다. 그러면서 튀니지의 명물 대추야자를 가면서 먹으라고 듬뿍 집어준다.

▲ 신전 토펫으로 통하는 입구

▲수천 개의 어린아이 유골단지

토펫(Tophet) 매표소에는 관리인 한사람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8디나르(5000원)를 내라고 한다. 나는 튀니지 외교부에서 만들어준 거주증을 보여 주면서 “한국에서 온 선생이다“라고 했더니 꼼꼼히 체크를 하더니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튀니지의 모든 관광지나 박물관에서는 학교 선생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국제학생증이나 이곳에 유학을 온 것이 증명되는 서류가 있어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학교선생님에게 입장료를 받지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튀니지의 교육제도를 소개할 때 다시 쓰기로 하겠다.

토펫은 카르타고인들이 자신들의 어린자녀들을 신에게 재물로 바친 신전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1921년 처음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 신을 달래고 왕국의 번영과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신에게 인신공양으로 바쳐졌던 어린 아이들의 비석들.

발굴 당시에 근처 지하무덤에서 어린아이의 유골들이 담긴 수천 개의 단지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바르도 박물관에 있는 라이언 머리를 한 카르타고의 수호 여신 타니트

성경에도 나오지만 토펫에는 페니키아인들이 믿었던 남자의 신 ‘바알 암몬(Baal-Hammon)’과 그의 부인인 여자의 신 ‘타니트(Tanit)’를 모시던 신전이 있었다.

이 신전에서 신을 달래고 왕국의 번영과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신에게 인신공양을 했다고 한다. 갓난아이를 재물로 용광로 속에서 태워 바쳤는데 처음에는 노예들의 자녀를 바쳤으나 나중에는 귀족들의 자녀를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무덤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수많은 작은 비석들. 이 비석들은 그 당시 제물로 바쳤던 어린아이들이 무덤에 세웠던 비석들이며 7개의 지층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 비석의 대부분에는 타니트 신을 상징하는 표식이 조각돼 있다. ‘바알 암몬’을 상징하는 초승달 조각도 보인다. 타니트 신을 상징하는 표식은 둥근 얼굴과 양쪽으로 쭉 뻗은 팔 그리고 하체는 치마를 입은 것처럼 삼각형 형태로 조각돼 있다.

이 표식은 이곳 뿐 만이 아니라 카르타고의 유물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양이다.

▲유일하게 로마유적 없는 곳

이곳에서 어린 아이 모습을 한 조각된 비석들을 보고 있노라니 온 몸에 이상하게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소름이 돋는다.

토펫 신전이 있던 곳에는 제물을 바쳤다는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지하 동굴 입구는 땅이 젖어 있었고 동굴 속에서 나오는 한기가 몸을 오싹하게 만든다.

동굴 속의 모습을 찍거나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아서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카르타고 왕국의 토펫 유적지에는 유일하게 로마유적이 없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자 카르타고를 완전히 불태워 버렸으면서도 토펫 신전만큼은 저주를 두려워해서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토펫 주변을 둘러보는데 계속 한기가 느껴지면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대충둘러 본 후 빨리 나와 다음 행선지인 ‘카르타고의 항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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