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12> 스베이틀라 ②

▲ 당시 로마인들의 거주지역. 저 멀리에 4세기 때 건축된 ‘성 세르부스 성당’과 ‘벨라토르 성당’ 그리고 6세기에 건축된 ‘성 비탈리스 성당’이 보인다.

튀니지의 불편한 교통체계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동료를 만났다. 감격스러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본격적인 스베이틀라 탐방에 나섰다. <편집자주>

▲이 곳에서도 “꾸리!(한국)”

스베이틀라 로마유적지 입구로 들어서니 경찰관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40도가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에 그것도 라마단 기간에 동양인이 나타났으니 신기한 모양이다.

경찰관이 “엔티 무닌?(어느 나라에서 왔어요)”하고 물었다. “나는 코리아 제주도에서 왔다”고 말하자 이 나라에서 항상 들어 보는 말 “북한? 남한?”하고 되물었다. 나는 다시 “남한”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니차르프!(만나서 반갑다)” “코리아! 웰컴!” “삼성” “기아카”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든다.

앞선 연재에서 말했듯 튀니지에서 삼성제품은 모두 최고급품으로 평가된다. 그 중 휴대전화는 최고 인기다. 몇 달치 봉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데도 다들 삼성 휴대전화를 선호한다. 기아차도 인기가 높다. 언젠가 택시를 탔는데 내가 ‘꾸리(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자기 차가 ‘기아’라며 영업용 차 중에 기아 차를 가진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뿌듯해하는 기사를 만난 일도 있다.

마침, 길을 건너려는데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왔다. 그 차가 지나가면 길을 건너려고 서 있는데 아까 대화를 나누던 경찰관이 갑자기 호각을 불면서 그 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먼저 지나가도록 손짓을 했다.

시골이어서 그 차외에 지나가는 차가 없었는데도 굳이 차를 세우도록 하니 도리어 운전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에서도 경찰관들 덕분에 입장권을 사지 않고 무료입장을 했다. 모두 한국 명성이 좋게 각인된 덕분이다.

▲라마단 기간 스베이틀라 탐방에 나서다

긴팔 셔츠를 입었는데도 살이 타 들어가는 것 같은 불볕더위다. 중간 중간 물을 꺼내 마시고 싶지만 라마단 기간이어서 대 놓고 물을 마실 수도 없다.

스베이틀라는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제국에 예속되었다가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면서 서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다시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로마제국의 영토가 된 곳이다.

스베이틀라는 330년에 건국한 동로마제국 북아프리카 속주의 마지막 수도였다. 스베이틀라는 646년에 동로마제국 아프리카 총독이었던 ‘플라비우스 그레고리우스’가 당시 황제 ‘콘스탄스 2세(Constans II Pogonatus)’가 이집트까지 이슬람 군에게 빼앗긴 데 반기를 들어 스스로 황제로 선포하여 반란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듬해 아프리카까지 침공한 이슬람군대에 의해 스베이틀라가 함락되면서 북아프리카에서의 로마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동로마제국은 내부 분열과 끊임없는 이슬람군대의 침공으로 아프리카를 방어할 힘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것은 로마인들이 만든 도로 때문이다. 로마의 유적지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도로는 평평하게 다져진 돌로 포장되어 있으며 모두 정방향이다.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의 길보다 더 정교하다.

나는 이 길에서 영화 ‘벤허’(1959)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로마의 군인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개선하는 모습이 환각처럼 눈에 나타났다.

▲ 신전으로 들어가는 아름다고 거대한 아치형 안토니우스 게이트(Antonine Gate)이다. 서기 139년에 지어져서 당시의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재위기간 서기 138년~161년)에게 헌정되었다.

▲토론 광장과 신전, 목욕탕, 주택

도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멀리 웅장한 석조건물이 보였다. 신전이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매우 아름다고 거대한 아치형 게이트가 있다. 안토니우스 게이트(Antonine Gate)이다. 안토니우스 게이트는 서기 139년에 지어져서 당시의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재위기간 서기 138년~161년)에게 헌정되었다.

잠시 엇나가는 말이지만 이때 한반도에서 신라는 제7대 국왕 일성 이사금이 재위하던 시기로, 말갈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고구려는 제6대 태조왕이 중앙집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체제를 정비하고 있었고, 백제는 제4대 개루왕이 북한산성을 쌓은 때이다.

아무튼 안토니우스 게이트는 고대 로마 건축의 특징인 세 개의 아치로 이뤄졌다. 이 문을 통과하면 고대 토론의 장소였던 아주 넓은 포럼(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을 지나면 놀랄 정도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세 개의 신전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주피터 신전, 주노신전, 미네르바 신전이다.

그 옛날 돌을 다듬어서 어떻게 하늘 끝까지 돌기둥을 세우고 신전을 만들었을까? 이 아름답고 웅장한 신전 앞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돌기둥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작품이다. 이곳에서 나는 조그만 생명체에 불과했다.

이곳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걸어가자 바닥이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주택들이 나왔다. 주택들 주위에는 공동목욕탕들이 있다. 안내도를 보니 이곳에는 여섯 개의 공동목욕탕이 있다. 공동목욕탕에는 지금까지도 수로와 온돌시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공동목욕탕 북쪽에는 바람이 불면 무너질 것 같은 3층 높이의 돌기둥들이 위태롭게 하늘을 찌르고 서 있다. 성당이다. 4세기 때 건축 된 ‘성 세르부스성당(Church of St Servus)’과 ‘벨라토르성당(Basilica of Bellator)’, 그리고 6세기에 건축 된 ‘성 비탈리스성당(Basilica of St Vitalis)’이다. 안내서를 보고서야 이곳이 성당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 로마인들이 세례를 받았던 ‘세례단’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세례단은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돼 있으며 탕 안에는 십자가와 물고기 등 초대교회의 상징들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스베이틀라는 4세기에 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중심지였다. 성당 앞에 그 당시 로마인들이 세례를 받았던 ‘세례단(baptismal fonts)’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어렴풋이 성당이었을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세례단은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탕 안에는 십자가와 물고기 등 초대교회의 상징들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그 모자이크는 몇 천 년이 흐른 지금도 아름답다.

▲지금은 흘렀던 흔적만 남은 강(江)

이곳을 나와 한참을 올라가니 3세기에 세워진 야외 원형극장이 나온다. 지금의 원형극장의 공연무대 기둥들은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관람석은 현대에 와서 새로 복원되어 있다. 원형극장 뒤에는 거대한 웨드 스베이틀라(Oued Sbeitla) 강이 흘렀다고 한다. 지금은 지형이 변해서 물이 흐르지 않지만 물이 흘렀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강폭을 보니 아주 큰 강이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 시대의 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겼다. 당시 목욕탕을 많이 짓기 위해서는 강이 흐르고 도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돌산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스베이틀라가 최적 요지였던 것이다.

개선문

돌아서 나오는데 아주 거대하고 웅장하게 서있는 로마개선문이 나타났다. 로마 황제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84~305)’에게 헌정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아치이다. 그런데 훗날 이 문이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모두 간직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시대가 바꾸어 졌을 뿐 로마가 만든 이 문을 통해 이 땅을 정복한 게르만 반달족, 이슬람아랍군, 오스만 터키군, 프랑스군, 심지어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전차부대가 정복자로서 행진을 했던 역사의 문이 되었다.

스베이틀라!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3개의 신전과 많은 공동 목욕탕, 야외극장, 방앗간, 주거 건물들을 보면서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이 얼마나 풍요롭고 호화롭게 살았음을 짐작케 했다. 시대의 숨결이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지금 현재의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오후 3시. 튀니지로 돌아가는 버스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고 유적지에서 나오는데 친절한 경찰관들이 다시 다가와서 “스쿤 엔티 윈 타우와?(이제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튀니스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여기서 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다”며 지나가는 차를 잡아주었다.

튀니지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엘 젬의 콜로세움, 카이로우안의 고대도시 등 8개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외에도 수많은 로마와 기독교 유적, 이슬람 유적이 있어서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 대국이다. 2015년 바르도박물관과 휴양도시 수스에서 연 달아 테러가 발생해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튀니지에서는 지금 다시 관광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외국인 보호에 정성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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