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회·경우회 조건 없는 화해 3년
4·3 해결 등 갈등 치유에 공동노력

제주의 가까운 역사를 이야기할 때 누가 감히 4·3을 제쳐둘 수 있을까. 참혹한 그날의 기억을 되뇌노라면 불안한 시대적 정국의 비극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하고 침통한 사연들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그저 평화롭기만 했던 이 땅 제주에서 사상과 이념의 굴레를 뒤집어 쓴 채 이유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기약 없는 생이별을 당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원치 않는 편 가르기가 발생했다.

‘4·3’이라는 비극의 역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이웃이 가족이며 제주 전체가 곧 한 울타리라는 의식이 끈끈하게 묻어있었다. 불운하게도 4·3으로 인해 소중한 운명공동체의식이 너무도 처참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는 물리적·외형적인 피해를 넘어선 제주도에 불어닥친 치명적인 폐해가 되고 말았다. 사실상 제주인은 다 같은 시대적 피해자임에도 서로를 질시하여 갈등과 반목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제주도를 옭아맨 갈등과 반목은 공동체의식 형성에 커다란 저해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지역사회 갈등의 잠재적 원인이 됐고, 대승적 도민단합에 중대한 걸림돌이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특별자치도재향경우회의 경우도 별반 다름이 없었다. 4·3에 대해 양 대척점에 서서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기에 바빴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갈등과 대립의 대표사례로 손꼽힐 정도였다.

이러한 두 단체가 지난 2013년 8월2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화해와 상생을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다. 반목의 역사를 겸허히 반성하고 지난 세월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서로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4·3의 완전한 해결과 도민화합에 앞장서기로 했다.

이 역사적인 화해의 기운은 더욱 확대됐다. 그해 12월27일 유족회와 경우회 회원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당 당직자와 도내 4·3 관련 단체 회원들까지 합동으로 ‘도민 대통합 추모행사’를 통해 충혼묘지와 4·3평화공원을 참배했다. 이후, 양측은 관련 기관 및 단체들과 함께 매년 8월2일을 기념해서 합동참배를 실시하며 화해와 상생의 정신 아래 진보나 보수, 여당과 야당의 구분 없이 뭉쳐진 하나 된 제주도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유난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합동참배는 이어졌다. 80여명의 인원이 충혼묘지와 4·3평화공원을 차례로 참배했다. 조촐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단합행사도 가졌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양측의 회원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서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희생과 아픔을 관용과 용서로 보듬고 달래며 서로를 먼저 위하는 조그마한 행동에서부터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표본을 엿볼 수 있었다. 굴곡진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한국근현대사의 희생양으로 먼저 가신 영령들께 헌화·분향하면서 4·3해결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다잡았다.

이러한 행동들이 제주도가 과거의 쓰라린 아픔을 딛고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선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의 하나인 내부갈등요소 제거에 일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울러 이러한 화해의 분위기가 전국적, 세계적 주류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평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람들은 형제로서 함께 살아갈 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멸망할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만의 입장을 고집하여 배타적 이기주의를 고수한다면 공멸할 것이기에, 등 돌린 채 반목으로 서로를 외면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형제·자매로서 동반자의 길을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존이자 상생하는 길이다.

청명한 가을하늘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무더위에 지친 대지에 한바탕 빗줄기가 내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숭고한 4·3정신이 평화와 인권의 새로운 가치로 승화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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