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가     조  정   의

   팔랑개비는 장난감이다. 이 장난감은 빳빳한 종이를 여러 갈래로 잘라 귀를 접어 한데 모으고 철사 따위로 꿰어, 가늘고 길쭉한 막대에 붙여서 바람이 불면 빙빙 돌아가게 만든 것이다. 이 팔랑개비를 바람개비라고도 한다.

지금은 초등학교 앞이나 골목길에서 팔랑개비를 돌리는 아이들을 대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가 어릴 적에는 이것을 손수 만들어 신나게 거리를 누볐다. 그 시절에는 이 보다 더한 장난감도 드물었다.

   팔랑개비는 바람이 불어야 돌아간다. 그 것도 풍향과 풍속에 따라 회전 속도가 다르다. 팔랑개비는 바람만 불면 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하면서도 사정없이 돌아간다.

그렇게 사정없이 돌아가다가도 바람이 자면 맥없이 돌기를 멈춘다. 돌아가기를 멈춘 팔랑개비는 참으로 보잘 것 없다.

그래서 신나게 돌아가던 팔랑개비를 잘 간수해 두지 않고 아무데나 버린다. 내일 바람이 불면 또 종이를 자르고 접으면 되는 것이기에 귀하게 여길 턱이 없었다.

이렇게 바람만 불면 신바람 나게 돌아가다가도 바람이 자자들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마는 게 팔랑개비의 속성이다. 그래서 팔랑개비를 우리네 인생과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엔 이 팔랑개비처럼 필요할 때 애지중지하다가도 소용이 없어지면 내동댕이쳐도 아쉬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것들이 더러 있다. 인간관계가 그 중 하나다.

어제까지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다가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돌아선다. 이것이 요즘 세태다. 이 번에 뜬금없이 치르게 된 6 .5 재.보궐 선거가 그 모양 세다. 2년 전에 머리를 조아리며 4년간 맡은바 소임을 다하겠노라고, 한번만 그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손바닥을 비볐던 그들인데, 이제 더 높은 자리에서 팔랑개비를 돌리려고 거리로 나선 모습이 연민(憐憫)을 느끼게 한다.

  예상치 못했던 선거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팔랑개비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 듣고 있자니 입맛이 씁쓸하다. 하기는 이 선거바람을 잘 타기만 하면 더 높은 곳에서 팔랑개비를 돌릴 수 있는 것이기에 2년 전 약속쯤이야 안중에 있을 리 없겠지만, 어쩐지 2년 전에 그들에게 한 표를 행사했던 심사가 꼭 풋감 씹은 맛인 걸 어쩌랴.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높은 곳에서 팔랑개비를 돌리는 맛은 낮은 곳에서 돌리는 것 보다 한 결 재미있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높은 곳을 향하여 팔랑개비를 들고 거리를 달렸다. 높은 곳에서 돌아가는 팔랑개비의 신기하고 오묘한 맛은 그 것을 돌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시장이 도지사를 향하여, 도의원이 시장을 향하여, 모두가 높은 곳에서 팔랑개비를 돌리려고 낮은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선 것이다. 2년 전 시민과 했던 약속 따위야 공염불이 되어도 좋다. 다만 더 높은 곳에서 팔랑개비를 신나게 돌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 높은 곳에서 시민을 위하여 팔랑개비를 신바람 나게 돌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선거라는 바람은 팔랑개비를 든 사람 모두에게 불어주는 게 아니다. 바람의 강약이나 방향은 불특정 다수인 유권자의 선택이다. 팔랑개비를 들고  높은 곳을 향하여 뛰는 것이야 그들의 몫이지만 그들의 갈망하는 바람을 일으키는 힘은 유권자에게서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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