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놀 권리’ 선언의 흐름

▲ 지난 7월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혁신광장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복합문화시설 조성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1922년 최초 ‘세계아동헌장’은 아동 생존권 규정 명시

1959년 UN ‘아동권리선언’부터 아동 놀이 권리 강조

1989년 UN 아동권리선언엔 놀 권리 위한 각 국 의무 명시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4일, 전국교육감협의회가 어린이 놀이헌장을 발표했다. 놀이기획을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한 이야기일 만큼 시도 교육감의 놀이헌장 선포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학력과 입시를 강조하며 경쟁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당연하게 물어왔던 공교육계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성장시킬 본연의 가치로서 놀이에 다시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동 놀 권리에 대한 제창은 20세기 초부터 협약을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됐다. 본 지는 이번 호부터 두 차례에 걸쳐 아동 놀 권리에 대한 구체적 흐름과, 우리보다 앞서 놀이에 주목하고 놀 권리를 보장해온 대표적인 나라들의 정책과 시각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1922년, 아이 보호에 관한 공동체적 선언의 등장
조선시대는 어른 중심의 사회였다. 세계적으로도 근대 이전까지 아동은 대개 어른이나 노인, 여성보다 낮은 권리를 인정받았다. 아아들은 인관관계, 지식, 지혜가 별 볼일 없고 도리어 귀찮은 존재로 인식됐다. 어린이라는 말 자체가 어리석은 이로 이해됐다.

이런 아이들을 생명 자체로서 귀하게 여기고, 잠재력을 가진 인간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동의 권리가 국제적으로 논의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의 일이다. 영국의 국제아동기금단체연합이 1922년에 발표한 ‘세계아동헌장’이 최초였다.

세계아동헌장은 25조에서 “모든 학교는 놀이터를 갖추어 넓은 땅을 가지지 못한 모든 아동이 방과 후에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명시했다. 주로 어린이의 건강과 보호와 관계된 생존권, 생활권 규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기초로 1924년 9월 26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연맹회의(현재 국제연합의 전신)에서 5개항(‘아동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이 채택됐다.

▲ 2015년 5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주최로 열린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식'에서 참석자들이 행사를 마치고 분수대 앞에서 바람개비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1989년, 각 국의 정책 수립 명시한 첫 협약 채택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959년에는 유엔(UN)이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했다. ‘교육 받을 권리와 놀 수 있는 권리’(7조)를 규정해 아동의 놀이권과 레크리에이션권을 강조하고, 특히 사회와 공공기관이 아동의 이 권리의 향유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1970년대에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아동의 놀 권리를 위한 국제협회(IPA, International Playground Association)’이 결성됐다.

그리고 1989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됐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당사국은 아동에게 문화, 미술, 오락, 여가활동을 위한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의 제공을 장려해야 한다…’(31조)는 내용 등으로 각 국이 정책 수립과 실행과정에서 아동의 놀이를 다뤄야 한다는 것을 처음 명시했다. 

협약은 전문과 54조로 구성됐다. 1~41조는 유엔 회원국들이 준수해야 할 아동의 권리를 포괄적이며 구체적으로 열거했고, 42~54조는 시행절차와 규정으로 담겼다. 이듬해부터 국제법의 효력을 가지게 됐다.

▲ UN이 아동권리협약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1989년 11월 22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렸다.

■현대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갖는 의미
1989년 11월 20일 제정된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현재 우리 공교육계가 시동을 걸고 있는, 즉 여전히 아이들에게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많은 권리들이 명시돼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1989년 제정한 아동권리협약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휴식, 여가, 놀이, 연령 적합성 등의 개념을 명확히 정리했다(2013년).

그에 따르면 휴식은 ‘일, 교육, 어떠한 종류의 작업으로부터 해방되어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건강한 발달과 웰빙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는 권리로 잠을 충분하게 잘 권리를 포함한다’고 했다.

여가는 놀이와 오락 활동을 하는 시간으로 아동이 선택하는 광범위한 자유재량 시간을 의미한다.

놀이는 아동 자신이 조절하고 구조화하고 시도하는 어떤 행동, 활동 혹은 과정으로 정리했다. 놀이는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하며 결과에 상관없이 놀이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생산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다.

이를테면 31조는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다'며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놀이와 오락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아동의 연령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고, 아동이 성장하면서 그들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에 공간도 달라져야 하며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놀이도 가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소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적인 놀이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이 이 같은 내용의 아동권리협약 31조를 잘 누릴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제시했다.

일부를 발췌하면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사회적 위험이나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환경 ▲연령과 발달에 적합한 휴식 제공 ▲놀 장소와 시간 제공, 성인의 통제와 감독으로부터의 자유 ▲다양하고 모험적인 환경을 통해 바깥놀이 활동이 가능한 공간과 기회 제공 ▲자연생태환경과 동물 세계에서 놀거나 함께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 제공 ▲상상력과 아동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 그들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변형시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제공 ▲이 31조 놀 권리에 대한 가치와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부모와 교사, 사회의 인식 등이다.

더불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31조항의 놀 권리를 실현하는 장애가 되는 요소로 ▲놀이와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재 ▲안전하지 않고 위험한 환경, 특히 빈곤지역 ▲(상업화로 인한)아동의 공공장소 사용에 대한 반대, 저항 ▲위험과 안전의 균형 ▲자연환경에 접근한 기회의 제한 ▲학업 성취의 압박 ▲지나치게 구조화되고 프로그램화된 일정 ▲전자매체의 역할 증대 ▲놀이 마케팅과 상품화(장난감 등) 등을 제시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또, 이 같은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의 보장을 위해 각 국가에 대해 자료수집, 입법과 계획, 예산 검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부처간 협력, 보편적 놀이시설 공급, 학교 연계 등의 구체적인 노력을 명시했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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