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사회’ 지향 法 취지 공감
공직 중심 ‘더치페이’등 확산
된서리 맞은 업종도 수두룩

국회의원 등은 제외 ‘반쪽실험’
“벤츠 여검사 無罪” 판결한 대법
사법부 변화 없인 ‘실효성’ 의문

이른바 ‘김영란법’이 전면 시행된 지난달 28일, 부부동반 친구 네 가족이 저녁자리를 가졌다. 화제는 단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었다.

필자를 포함 전직 언론인과 현직 교사 등이 자리를 함께 했는데, 우리도 혹시 어느 조항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자체 유권해석 결과 다행스럽게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저녁을 이어갔다.

이날 ‘청렴(淸廉) 사회’를 지향하는 법 취지엔 참석자 모두가 공감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점차 삭막해져 가는데, 도덕률도 아닌 법으로 모든 걸 규제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지금 언론들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 ‘9월 28일’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 단언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 법이 가져온 ‘후폭풍(後暴風)’이 거세다.

우선 국정감사장 분위기가 변했다. 예전 같으면 피감기관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 터인데 식사 뒤 밥값을 각자가 지불했다.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더치페이(각자내기)’도 확산되고 있다.

화환으로 상징되던 경조사(慶弔事) 풍경이 바뀌는가 하면, 축의금과 조의금을 줄이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법에 저촉되는 진료일이나 수술날짜를 앞당겨달라고 병원에 부탁하던 모습도 앞으론 찾아보기 힘들 전망이다.

반면에 전국 골프장은 예약 미달 및 취소가 속출하고 있다. 그동안 ‘접대문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지갑을 닫은 상태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현재로선 짐작키 어렵다.

특히 화훼·축산농가 등 일부 농민이나 비싼 어종을 취급하는 어민 및 가게, 고급음식점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축하 난과 꽃 선물 기피현상이 벌어지고 관공서 주변 식당가와 대형음식점엔 찬바람이 불고 있다. 때문에 업종 전환과 폐업(閉業) 얘기까지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는 ‘김영란법’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가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8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김영란법 준수 의지에 대해 물은 결과 67.2%가 ‘준수할 자신이 있다’고 응답했다. ‘준수할 자신이 없다’는 응답(17.5%)보다 3배 이상이나 높았다.

김영란법 시행 후 ‘더치페이’ 문화 확산 여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는 의견이 50.7%로, ‘잘 안 될 것이다’라는 응답(35.9%)을 크게 웃돌았다.

한국일보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또한 법 시행 이후 긍정적인 의견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영란법에 대한 우려보다 희망과 기대가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이 같은 국민들의 의식 속엔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겠지만, 김영란법이 ‘부패(腐敗)공화국’이란 오명을 씻고 한국의 문화를 새롭게 바꿀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한 가지 간과(看過)하지 말아야 할 것은, 때론 세세한 규제 및 규정이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행 중인 김영란법의 경우 1차 대상자만 무려 400만명에 달하며, 애매모호한 조항들이 많아 정작 당사자들도 헷갈리기 일쑤다.

사실 김영란법 제정의 계기가 된 것은 ‘벤츠 여검사’ 비리였다. 그러나 이 여검사는 대법원에서 무죄(無罪) 확정을 받았다. 변호사(내연남)로부터 받은 벤츠는 직무와는 연관이 없는 ‘사랑의 정표’라는 것이 판결 요지였다.

이후 진경준 전 검사장 및 김형준 부장검사나 공직사회의 각종 비리가 터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들의 비리는 결코 관련 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사법부가 제대로 서지 않는 한 김영란법의 ‘실효성(實效性)’도 그다지 기대할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이번 대상에서 국회의원은 제외됨으로써 다시 한 번 특권층임을 확인시켰다. ‘거악(巨惡)’은 놔둔 채 말단 공무원들과 백성들을 옥죄는 법으로 전락한 것만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클린 대한민국’을 향한 대대적인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법 만능주의'가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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