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시디 부 사이드 ②

▲ 시디 부 사이드는 지중해가 시작되는 해안가에 자리해 있다. 기원전 어느 한때 지중해의 해상무역권을 두고 카르타고 왕국과 로마가 120여년간 전쟁을 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지난주에 첫 편을 통해 소개한 ‘시디부사이드’는 하얀 벽과 푸른 창문의 집들이 지중해의 빛깔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시디’는 성인, ‘부’는 마을, ‘사이드’는 13세기 이 마을에 거주했던 이슬람 지도자의 성을 가리킨다. 나는 이 아름다운 곳을 ‘튀니지안 블루’라고 지칭한다. <편집자주>

▲재스민을 귀에 꽂은 남자

시디 부 사이드로 올라가는 초입에서부터 바람결에 떠다니는 향기는 튀니지의 국화인 재스민의 향기였다. 재스민의 꽃말은 ‘신의 선물’이다. 향이 강해 한 송이 꽃으로도 사람들의 혼을 빼앗아 버릴 정도다.

그 향기에 이끌려 길가에서 재스민 꽃을 묶어서 팔고 있는 아저씨를 만났다. 내가 살고 있는 바르도 지역에서는 재스민 꽃 한 다발이 800밀림(480원)에 팔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향기에 도취해 3디나르(1800원)에 구입해버렸다. 내가 재스민을 귀에 꽂자 아저씨가 웃으면서 결혼을 했느냐 묻는다. 이 나이에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는 나에게 꽃을 오른쪽 귀에 꽂으면 기혼이고, 왼쪽에 꽂으면 미혼이라고 귀띔해주었다.

튀니지에서나 볼 수 있는 비취빛 도자기의 유혹을 받으며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갈래 길이 나왔다. 그 앞에서 망설이는데 나에게 꽃을 팔았던 아저씨가 멀리서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다. 왼쪽 건물을 가만히 보니 민속의상박물관이라고 벽에 쓰여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가 온통 하얀색의 벽과 파란색의 창문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방마다, 신비로운 튀니지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전통 의상과 민속 공예품들을이 전시돼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 부호가 살았던 거대하고 화려한 저택을 개조한 곳이라 한다.

아랍풍의 방, 터키풍의 방, 프랑스풍의 방에서 빼어난 공예품과 채색된 도자기, 전통 문양을 넣어 짠 양탄자 등을 보면서 로마 시대에 카르타고라 불렸던 이곳 ‘시디 부 사이드’에서 반달왕국,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프랑스 그리고 6세기에 이곳에 들어와서 정착한 아랍민족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집 내부는 완전 미로와 같았다. 여기 저기 빙빙 둘러보며 화려한 시대의 부귀를 느끼면서 정원으로 나왔더니 공예품을 파는 상점과 카페가 있다. 카페의 의자에 앉으니 튀니지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가 무엇을 마시겠느냐면서 주문을 받는다. 한잔에 얼마냐고 가격을 들어봤더니 웃으시면서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다면서 무료라고 한다.

민속의상박물관을 나와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쭉 늘어선 나불지방의 명물인 채색 도자기를 파는 상가가 보였다. 낮선 동양인이 신기한지 일본말 중국말 등으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상점에 들어서니 다양하고 화려한 모양의 그릇들이 인상적이었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의 가격보다 무척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한 여성이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귀가 번쩍 뜨여 나도 “아슬레마?(안녕하세요)”하고 답을 했더니 아랍어로 인사를 한다고 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케이 팝을 좋아하는 튀니지 대학생이었다.

▲ 앙드레 지드가 자주 찾았다는 ‘카페 데 나트’.

▲세계적 문호들이 머물던 자리

우연히 만난 여학생 이릉은 애리지(arij zouhour). 나이는 22살.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진 여학생이 나를 앙드레 지드가 살면서 작품을 구상했던 유명한 ‘카페 데 나트’로 안내했다.

‘카페 데 나트’는 돔형 지붕인 이슬람 전통 건물 양식과 내부는 한국의 전통찻집처럼 양탄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곳이다. ‘나트’는 프랑스어로 ‘돗자리’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평소에 앙드레 지드가 글을 썼다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또한 이곳은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로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 프랑스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모파상’, 어린왕자의 ‘생텍쥐베리’, 스위스의 화가로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이며 대표작으로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을 그린 화가 ‘파울 클레’, 현대 여성주의의 초석이 된 글 제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 등도 방문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곳이기도 하다.

양탄자 위에서 두발을 쭉 펴고 차를 마셔보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양탄자를 타고 날아오르는 느낌이 민트 차처럼 감미로웠다. 이곳은 유럽에서 문학의 길을 꿈꾸는 지망생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따라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지중해를 보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는 골목길의 건물 흰색의 외벽은 온통 지중해의 푸른빛으로 채색되어 있다.

드디어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시디 부 사이드’의 바다가 보였다. 이곳부터 지중해가 시작된다.

이곳은 페니키아인들의 카르타고 왕국과 고대 로마가 지중해의 해상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120여 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포에니 전쟁(기원전264년~기원전146년)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지중해가 보이는 언덕에서 광활하고 푸른 바다의 풍광을 한 눈에 보고 있노라니 신선이 따로 없는 듯 했다.

지중해를 품은, 흰빛과 푸른빛의 마을 ‘시디 부 사이드’의 강렬한 햇빛, 뜨거운 바람, 시대를 초월한 다양한 건축물들에 하나하나에 취하다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쉬움 속에 ‘은네즈마 은자하라 팔래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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