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들 제주 개발광풍에 분노
중국자본 대상 매각 심각
잘 간직해왔던 청정구역까지

한라산의 가슴팍 오라단지
그곳에 ‘삽질’은 눈먼 야합의 결과
제주다움·사람다움 삶 희망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의 미술관 개관식 참석차 지난달 말 오랜만에 제주를 다녀왔다. 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어머니도 몹시 그리웠던 터였다. 아흔이 목전이지만 가끔 밭일까지 하실 정도로 정정하다. “제주에 뵈러 간다”고 하면 “길에 뿌리는 차비가 아깝다”며 적극 만류하는데 다른 일로 왔다가 들른 거라면 타박 없이 맞아 주신다.

공항에 내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저지예술인마을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어수선한 도심을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삼나무 숲들이 스쳤다. 뒤이어 탁 트인 광활한 들판이 드러났다.

늦여름의 짙푸른 초목들을 배경으로 까만 돌담과 하얀 억새꽃들이 줄달음치고 그 너머로 부드러운 오름의 곡선들이 슬며시 자태를 틀며 멀어져갔다. 묵은 피로들이 한꺼번에 가신 듯 마음이 가볍다. 바람에 빙의된 듯 들판을 어루만지며 함께 내달렸다. 매번 본향에 돌아왔음을 실감하는 통과의례였다.

미술관 개관식은 성황이었다. 도내·외 주요 관련 인사들과 멀리 프랑스에서까지 참석한 많은 손님들이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의 탄생을 축하했다. 묵직한 현무암색으로 외관을 살린 나지막하고 절제된 규모, 제주의 이미지를 살린 간결하고 알찬 공간들이 돋보였다.

김 화백의 추상화 대작이나 물방울 대표작들과도 잘 어울렸다. 참석했던 화가들은 부러워했다. 특히 도립미술관이라는 점에서 더 반겼다. 그러나 삼삼오오 무리지어 나누는 대화들은 제주도의 개발정책과 각박해진 제주인심에 대한 쓴소리들이 많았다.

올레길이 열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속살을 깊숙이 체험했다. 자연 속을 걸으며 상처를 치유하고, 휴식을 만끽했다. 그리고 열광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가치에 막 눈을 뜨자마자 개발광풍에 휩싸이는 걸 보며 분노하고 있다. 그동안 잘 간직해왔던 청정구역까지 해제해가며 중국대자본에 매각하는 것을 보고 제주의 행태에 반발과 혐오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예술인들은 더욱 민감했다. 자연훼손을 불사하는 대규모 개발은 폐기돼야할 후진적인 행태이며, 천박한 논리이고, 시대의 역행이라고 성토했다. 그래도 이번 미술관 개관이 1회성이 아닌 청정자연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미래제주로 방향을 선회하는 계기이고, 초석이길 간절히 바랐다.

행사를 마치고 서귀포로 향했다. 드문드문 불빛들이 스칠 뿐, 저지에서 중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고요했다. 검푸른 밤하늘과 그림자 같은 초목의 출렁임만이 어렴풋했다. 이 일대도 대규모 개발예정지다.

중문부터는 불야성이었다. 서귀포 초입의 고향마을은 이미 옛 모습을 잃어버린 지 꽤 오래 되었다. 마을입구에 빽빽이 들어서고 있던 고층 아파트단지는 그새 입주가 완료되었는지 도시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집에 도착해 어머니와 회포를 풀며 근황을 들었다. 서울에서 듣던 것보다 험악했다. 인심도 살벌해지고 폭등한 땅값 때문에 가족끼리 상속과 분배를 놓고 소송을 벌이는 곳도 허다하다며 길게 한숨을 토해 내셨다.

“우리야 4.3사건에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목숨 하나 붙어 있어서 죽기 살기로 ‘조냥’하며 살았주. 아무리 살기 좋다고 해도 요즘 사람들 펑펑 쓰는 거 보민 겁난다. 그 쓰레기들은 다 어찌하며, 그 돈은 다 어떻게 감당할까. 돈이 아무리 쌓여있어도 만족 못한다. 이젠 땅값이 너무 올라 한번 팔면 다시는 못 사고, 땅 판 돈 굴리다 잃어버리면 중국 사람들 뒤치다꺼리 하며 사는 거여. 늙은이들은 다 살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여.”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어머니의 육성이 내내 맴돌았다.

그런데 한라산의 가슴팍인 오라관광단지마저 중국자본에게 개발허가를 내준다는 뉴스가 머리를 강타한다. 역대 최대 면적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된다고 한다. 중국자본과 국내 대기업, 정치권력과 개인들이 이익에 눈이 멀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야합의 결과다.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삼지만 지금도 중국인 일자리만 계속 늘어나는 실정이다. 이 결정을 제어할 장치나 정신적인 힘은 미약해 보인다. 제주다움, 사람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이었던가. 제주여!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