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소득 3000달러 빈국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1위’
‘국민총행복’ 국정운영 지표

제주 지역경제 급성장 속에
도민들 삶의 질 하락 ‘역설’
무개념 성장정책 슬픈 현실

부탄은 가난하지만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알려졌다. 히말라야산맥 지대에 위치한 이 나라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정도의 빈국(貧國)이다. 하지만 2010년 유럽 신경제재단(NEF) 조사에서 부탄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1위로 나왔다.

생활수준 등 객관적 정황으로 볼 때 부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실제로 행복하냐 아니냐를 떠나 부탄 정부가 ‘GNH(국민총행복)’을 국가 정책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부탄왕국은 1976년 “GDP(국민총생산)가 아닌 GNH를 기준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발표했다. GNH는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국정 운영의 철학이다. 부탄에서 GNH는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국가정책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헌법에 “국토의 60%는 산림으로 유지한다”고 명시했다. 부탄은 다른 나라들처럼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급급해 하지도 않는다. 부탄을 여행하려면 하루 200달러(비성수기)·250달러(성수기)를 여행사를 통해 미리 납부해야 한다. 이 가운데 65달러는 관광세로 부탄 정부가 뗀다고 한다. 관광정책의 초점이 ‘양보다 질’에 맞춰졌다. 관광산업이 양적 성장에 치우치고, 개발지상주의가 판치는 제주와는 대조적이다.

최근 제주 경제 성장세가 눈부시다. 작년 지역내총산생(GRDP)은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전국 GRDP 평균 증가율(2.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관광객과 인구 증가 등이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2010년 800만명이던 제주 관광객은 지난해 1400만명으로 5년 새 42.8% 증가했다. 인구도 2010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대한 도민 체감도는 높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성장의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과 이주민 증가로 갈수록 심해지는 교통체증과 쓰레기, 환경오염에 다수의 도민은 고통만 겪고 있다. 치솟는 주택 가격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지고, 잇따르는 외국인 관광객 강력범죄에 주민들 불안감은 높다. 경제성장 속에 도민들의 삶의 질이 하락하는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 개념 없는 성장 정책이 빚은 슬픈 현실이다.

제주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외자(外資) 유치를 통한 대규모 관광 개발사업을 추구해왔다. 사업이 지역경제 외형 성장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됐지만 도민들 행복 증진에는 별 기여를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대규모 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도민들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개발 본능은 폭주 기관차처럼 멈출 줄 모른다. 지금도 관광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천혜의 자연자원인 중산간 등이 마구 파헤쳐 지고 있다.

제주도는 ‘청정과 공존’을 도정의 미래비전으로 제시했다. 실천방안의 하나로 ‘환경자원총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비전이 도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도 ‘청정과 공존’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 사업은 해발 350m~580m 중산간 부지 357만5753m²에 사업비 6조2800억원이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공사 과정에서 환경 훼손은 물론 시설 건립 후 운영 시 생활하수 처리 부담 등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오라단지 내 총량제 1~2등급 지역이 90% 이상이어서 총량제 도입 시 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인허가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도정이 여전히 과거 시대의 ‘성장 제일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이제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민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제성장은 의미가 없다. 성장의 질을 고민해야 할 때다. 부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 가난한 나라가 관광객 유입을 억제하고, 산림 등 환경보호에 매진하는 이유를 곰곰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국민행복을 우선시 하는 부탄의 정책은 제주가 자신을 돌아보고 배워야 할 좋은 케이스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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