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서열 1위’ 회자되던 최순실
대통령 쥐락펴락하며 ‘국정 농단’
국민들 충격과 분노, 허탈감 빠져

청와대 인적쇄신 ‘만시지탄’
崔 귀국 검찰 출두…이목 집중
수사 결과에 검찰·대통령 ‘命運’

 

“우리나라 국가권력 서열 1순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박근혜 대통령이다.” 지난 2014년 박관천씨가 검찰 수사와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내뱉은 말이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내용의 언급이었지만 주목하는 이 없었고 파문도 크지 않았다.

당시 박관천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행정관(경정)이었다. 특수수사로 잔뼈가 굵은 그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 대통령이 말한 ‘찌라시 유출’, 이른바 ‘국기(國紀) 문란’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찌라시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의 동향을 다뤘다. 박 경정은 해당 문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에 자리한 10여명의 인물을 ‘십상시(十常侍)’라 칭하고, 비선 실세의 정점에 정윤회가 있다는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같은 해 11월 언론에 보도되며 ‘정윤회 파문’의 단초가 됐다. 결국 박 경정은 직속상사였던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후 조응천과 정윤회는 둘 다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박 경정은 징역 8월집행유예 2년(2심 재판)에 처해졌다.

박씨의 ‘권력 서열’ 발언이 다시 회자되는 것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최순실 국정농단(國政壟斷)’ 사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금 나라 꼴은 말이 아니다.

아무런 공식 직책도 없는 최씨가 물밑에서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다. 대통령 연설문을 마음대로 고치고, 정부 인사 내용을 미리 보고 받아 인선에 개입하는가 하면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을 모금했다.

아무리 호가호위(狐假虎威) 한다지만, 캐도 캐도 끝이 없는 각종 비리에 국민들은 너무 참담하고 절망스럽고 또한 슬프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나라냐”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주말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下野)와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뒤늦게 청와대 참모를 중심으로 인적 쇄신(刷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이게 수습책이 될런지는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30일 이원종 비서실장을 비롯해 우병우 민정수석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김재원 정무수석과 김성우 홍보수석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특히 대통령의 분신(分身)과 같은 존재들인 이재만 총무·정호성 부속·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도 내쳤다. ‘정윤회 파문’에는 버텼던 이들이 결국 ‘최순실 사태’에 이르러 물러나게 된 것이다. 우병우 수석이나 3인방의 경우 진작부터 교체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터인데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국정 농단’의 핵심인 최순실(60·최서원)씨가 31일 오후 검찰에 소환됐다. 온갖 의혹과 억측을 몰고 다니며 국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 사람임을 부끄럽게 만든 장본인이다.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가 마침내 열릴지, 모든 이목이 검찰로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최씨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청와대 문건 유출과 기금 유용,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등이다. 하지만 이는 법률에 의거한 것일 뿐, 허탈감과 무력감(無力感) 등 그가 국민들에게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번 수사 결과에 검찰과 대통령의 명운(命運)이 함께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각에선 국정 농단 연루자들이 갑자기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누군가의 기획 및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이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거센 저항 속 나라 전체가 파국(破局)으로 치달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검찰은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엔 개인과 정권의 안위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망양보뢰(亡羊補牢)’란 말이 있다.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이다. 임기를 1년4개월 남겨놓고 있는 박 대통령이 앞으로 역사(歷史)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는 스스로의 결단에 달렸다. 그 가능성을 떠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게 지금 대다수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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