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률의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
<27> 비제르트(Bizerte)

▲ 비제르트 개폐교에서 바라본 인공 항구.

▲비제르트로 가는 르와지에서

버스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니 튀니스의 뱁사둔(BabSaadoun)에 있는 노르(북쪽)르와지 터미널에서 타면 된다고 한다. 노르 르와지 터미널은 내가 살던 바르도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아침 일찍 르와지 터미널에 갔더니 북쪽 지방으로 출발하는 르와지 호객꾼들의 외침 소리가 마치 시골장터와 같았다.

내가 “비제르트!”라고 외치자마자 한 호객꾼이 다가와 비제르트행 르와지(8인승 소형버스)까지 안내해주었다. 르와지는 출발 시간이 없다. 정원 8명이 다 차야 출발을 하는데 큰 도시라서 그런지 정원 8명이 바로 차서 출발을 했다. 차비를 주었는데도 받지를 않는다. 출발했는데도 마찬가지로 받지를 않는다. 튀니지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하다. 그래서 외국인이라서 차비를 받지 않겠다는 뜻인가 하고 잠시 착각도 했다.

옆 자리에 앉은 분이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읽었는지 웃으며 나중에 내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튀니지에서는 르와지를 타면 목적지에 다가와야 맨 뒤에 있는 승객이 앞자리에 있는 승객의 등을 툭툭 치면서 앞으로 돈을 전달한다. 참 독특한 교통문화를 갖고 있다.

르와지는 역시나 120㎞이상으로 과속을 했다. 운전사는 과속을 하면서도 한 손으로 전화도 받고 물도 마시고 하는데 처음에는 마음 졸였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고 적응이 됐다. 1시간을 달려 비제르트에 도착하니 터미널이 외곽지여서 그런지 건물도 없고 바다도 안 보였다. 터미널에는 안내지도 하나 없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 올드 포트에 있는 메디나. 17세기 오스만 제국때 지어진 주택들로서 지금도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충지의 강점은 전쟁의 상흔으로

20여분을 걸어서 가니 그제야 건물들이 보이고 바다가 나타났다. 다시 10여분을 더 걸어가니 다리가 나왔다. 이 다리는 외관상으로도 아름다웠지만 비제르트에서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라고 한다.

저 멀리 내륙 깊숙이까지 항구가 보이는데 그 항구는 프랑스가 이곳을 지배할 때 사람이 손으로 파서 만든 인공 항구다.

다리는 개폐교다. 하루에 세 번, 오전 8시와 오후 4시, 저녁 8시에 배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다리를 들어 올린다고 한다.

다리에서 보니 인공 항구를 중심으로 프랑스풍의 현대식 건물과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이곳이 신시가지다.

다시 다리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니 ‘올드 포트(옛 항구)’와 아주 거대한 ‘카스바(Kasbah, 성과 요새)’가 나왔다. 비제르트는 인공항구와 올드 포트 2개를 갖고 있었다. 전혀 부서지지 않은 완벽한 10m 높이의 ‘카스바’는 6세기에 비잔틴 제국이 세웠다. 지금의 성채는 17세기에 오스만제국(터키)에 의해 재건됐다.

수로 맞은편에 또 하나의 성이 있는데 그 성은 6세기 비잔틴제국에 의해 처음 세워진 것을 아글라브 왕조(800~909)가 개조한 '크시바(Ksibah, 작은 항구)'다.

올드 포트는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와 로마제국의 포에니전쟁으로 파괴됐었다. 지금의 지명인 비제르트로 불리게 된 것은 서기 678년 아랍인들이 정복하면서부터다.

1535년부터 1570년까지 스페인이 통치하다가 오스만제국(Ottomans)으로 넘어가 무슬림의 해적 본거지가 됐고, 1881년부터 튀니지를 점령한 프랑스가 이곳에 있는 거대한 호수를 바다까지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면서 서지중해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이 항구를 차지하기 위해 연합군과 독일의 롬멜 장군이 격전을 벌였다. 1956년 튀니지가 프랑스 지배에서 독립한 후에도 프랑스가 해군을 철수시키지 않자 튀니지 군과 프랑스 군이 전쟁을 벌일 만큼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처럼 비제르트는 역사적으로 지중해를 지배하기 위해 여러 민족이 점령하고 생활하면서 각 민족의 문화를 남겼다. 동시에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으면서 깊은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 올드 포트에 있는 매디나. 17세기 오스만제국때 지어진 미로의 길. 한번 들어 가면 쉽게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가 더 많은 미로 길

카스바의 둘레 길을 따라 들어가니 비제르트의 메디나(옛 시가지)가 나왔다. 프랑스 통치 시기에는 ‘Ville Arabe(ArabTown)’이라고 불린 곳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건축한 전통 가옥과 예쁜 대문들, 아주 오래된 이슬람 사원모스크들이 옛날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었다. 지금도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튀니지 여행의 맛은 좁은 길을 걷는 데 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쉽게 찾을 수가 없고 돌고 돌아도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온다. 좁은 미로 길은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두려울 정도로 사람들보다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이슬람의 예언자이며 창시자인 무함마드(마호메트 또는 모하메드/Mohammed, Muhammad, Mahomet)는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권에선 고양이를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 39. 튀니스로 돌아가는데 르와지 운전기사가 나에게 낙타를 가리키면서 낙타를 먹어 본적이 있느냐고 하면서 잠시 낙타고기 집 앞에 세우면서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튀니지인들도 낙타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다.

▲시가지가 한 눈에

메디나의 좁은 도로를 걸어가는데 한 할아버지가 동양인을 처음 봤는지 아주 신기해하면서 오늘은 특별히 성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개방하는 날이라며 입구까지 안내해 주었다.

입구는 누가 안내해 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아주 구석 진 곳에 있었다. 성위에 올라가니 17세기에 사용했다는 대포들이 성벽에 그대로 배치되어 있고 비제르트가 환히 보였다. 지금도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신도시와 구도시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다. 바다와 넓은 초원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다.

▲ 올드 포트 광장에는 고기를 어시장에서 사오면 고기를 굽고 있는 식당들이 즐비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

그 곳을 나와 다시 골목길을 따라 걷자 비잔틴 시대의 원형극장이 나왔다. 지금도 각종 축제나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는 너무 현대적으로 복원을 하는 바람에 유적의 가치를 잃어버려 아쉬웠다.

카스바에서 나와 올드 포트 광장으로 향했다. 올드 포트 광장에는 고기를 굽고 있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나도 이 기회에 지중해에서 잡히는 바다고기를 먹으려고 제일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서 보니 고기는 없고 보통식당과 똑 같다. 식당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어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오면 구워준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주위에 있는 손님들도 고기를 들고 와서 주인에게 건네주고 있다. 나도 이들 틈에서 시장으로 가 새우와 고등어를 샀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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