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 조선 200년간 집중 출륙
‘포작인’ 또는 ‘두무악’ 불려
대규모 제주인구 절반까지 유랑

뛰어난 항해술과 전투력
이순신 장군 도와 해전 승리 기여
‘난세’에 그려보는 ‘영웅들’

고려 원종 14년(1273) 홍다구 등이 이끄는 몽고군 6000명과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 6000 등 1만2000명 여몽연합군에게 삼별초군이 진압된 후 102년 동안 제주는 몽골의 직할지를 겪으면서 목마(牧馬)경제로 전환한다. 원 제국을 배경으로 제주의 경제는 이때 상당히 활성화된다.하지만 고려가 망하고 새로운 조선 정부가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제주 경제는 활력을 잃어간다. 말 교역을 중앙정부가 강력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제주민은 살 길을 찾아 바다로 나간다. ‘포작인’ 혹은 ‘두무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제주유민들이다.기존 연구는 이들의 출륙 배경을 단순히 자연재해와 관의 수탈만으로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재해와 관의 수탈은 중세 내내 존재했던 출륙 유발 요인이다.

그렇다면 그 200년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한 출륙을 설명할 또 다른 요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곧 목마경제의 붕괴였다. 중앙집권이 강화된 조선정부가 제주의 부(富)를 독점하고자 나섰다. 그것은 말 자유교역의 금지로 나타났고 이는 제주민의 경제생활을 극도로 피폐화시켰다.말 수송에 사용되던 큰 배는 아예 못 쓸 배가 되고 말았다. 제주인들은 ‘테우’라는 땟목을 이용한 바다낚시나 자리를 거리는 정도의 어로(漁撈) 활동만 할 수 있었다.가족 단위 씨족 단위 등 큰 배를 활용한 출륙유랑으로 이어진 건 당연한 결과다. 지금은 해녀들이 바다 일을 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엔 포작인이라는 남성들이 전복 따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힘든 일을 했다.

이들 포작인들을 포함한 출륙 유랑민의 규모는 적지 않았다. 4만~5만 명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3 혹은 1/2 수준이었다. 해산물을 채취할 남자들이 제주에 남아 있지 않아 여성들이 바닷일을 하게 됐다.

사람들이 대거 출륙해버린 제주도의 모습을 중종실록에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주민들이 날로 유망(流亡)해 고을이 거의 비어있다”고 기록돼 있다. 제주를 뜨는 사람이 너무 많아 조정에서는 1629년 출륙 금지령이라는 법을 제정, 1826년까지 200년 동안 제주 안에서만 떡을 치던 매를 치던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이처럼 많은 숫자는 출륙유랑이 제주민 전반에 걸쳐 발생했음을 말해준다. 이들의 주 유랑 대상지는 주로 남해안 일대였지만 중국 요동반도 아래의 해랑도까지 갔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경상도 관찰사와 좌·우도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에게 유시하기를, 제주의 도두야지라고 이름을 칭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2~3척의 배를 가지고 출래하더니, 이제는 변하여 32척이 되었으며 의복은 왜인과 같으나 언어는 왜말도 아니고 한어(漢語)도 아니며, 선체는 왜인의 배보다 더욱 견실하고 빠르기는 이보다 지나치는데, 그들이 타는 배는 튼튼하고 무진장 빠른 배, 그 제주도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도두야지’라고 불렀습니다.”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주 포작인은 실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장계에 “물결이 험하고 평탄한 것을 알 수 없고, 물길을 인도할 배도 없으며”라며 전문 수로 안내인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 제주민들이 활약했다.

첫 전투부터 이들 제주유민. 즉 포작인이 등장한다. “배를 잘 부려 물결에 달려가는 것이 나는 새와 같으니”라는 실록 기록은 이들의 뛰어난 항해술을 말해준다. 이순신 역시 “건강하고 활을 잘 쏘며 배도 잘 부리던 포작”이라고 이들의 뛰어난 항해 능력과 전투력을 언급했다.그들은 바다 물길과 지형지물을 훤하게 알고 있어 임진란 전투에서 32전 전승을 거두며 조선을 구하였다. 임진왜란 전투 사망자와 부상자 현황에서 제주유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는다고 역사는 전한다.

420년 전 바다에서 승화한 임진왜란의 영웅, 포작인 선조님들의 명복을 빈다. 화산토의 척박한 땅 제주에서 바다로 내몰린 탐라 선인들 포작인, 그들이 있어 임진왜란 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으니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난세’이다 보니 ‘영웅’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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