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相生, 실제는 相剋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밝힌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지표다.

노대통령은 또 탄핵 기각후 업무에 복귀하면서 ‘상대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상생(相生)의 정치를 약속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상생을 강조하고 대화와 타협을 노래하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대통령의 ‘상생 메뉴’는 립 서비스 차원일 뿐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로는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되뇌이면서도 실제는 상극을 부채질하는 권위주의적인 밀어붙이기식 ‘정치공학’의 냄새가 짙게 풍겨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지는 대통령의 발언들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오기와 독선이 베어있다.
정치적 반대 세력은 수구고 악의 축이며 자신의 영역은 진보적이며 선의 핵이라는 오만한 편견에 사로잡힌 듯 하다.

이른바 ‘김혁규 총리 카드’도 상생보다는 상극에 가까운 컨셉이다.

입당 조건 총리직 뒷거래 설

야당에서 모질게 반발하고 여권에서도 불가론이 제기되고 있는 ‘김혁규 카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CEO(최고경영자)형 경제적 마인드’가 어느 정도 긍정된다해도 그것이 발탁이유라면 설득력이 약하다.

김씨는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의 개혁 성향에 어울리는 인물은 아니다. 이력을 살펴보면 그렇다. 개혁보다는 친 기업적 이미지에 가깝다.

그의 기용이 지역주의 극복과 사회통합에 얼마나 기여할지도 의문이다.
되레 분열과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지 모른다.

그래서 ‘김혁규 카드’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이 있다.
‘국무총리 내정설’이 그것이다. 세 번이나 경남지사에 당선시켜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입당 조건으로 ‘국무총리 자리’가 뒷거래 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P.K 지역 자치단체장 보선에 대비한 득표 전략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총리 거명자가 “P.K 보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대통령이 큰 선물을 줄 것”이라고 공언하고 다녔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김혁규 총리 카드’를 P.K지역 ‘6? 재보선’ 전략으로 활용, 4?5 총선에서 못이룬 승리를 이뤄내겠다는 대통령 특유의 오기정치 발동이 아닌가.

믿음 주는 ‘전략적 수’ 내놔야

‘김혁규 카드’가 권력의 뒷거래에 의한 것이든 P.K 지역 재보선 올인 전략 때문이든 이제는 거두어들이는 게 옳다.

야당이 “철새형 배신자”로 찍어 죽어라 싫어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입으로는 상생을 노래하면서 부득부득 고집을 피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웃집의 남의 아내를 꼬득여 이혼시킨 후 데리고 살면서 이웃집 남자에게 “상생하자”고 악수를 청한다면 누가 그에 응할 것인가. 너무 어이없고 뻔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게임 이론에는 상대방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위해 ‘전략적 수(Strategic move)’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를 믿게 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공약(Credible commitment)’을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도 진정으로 상생의 정치를 원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승복의 정치문화를 기대한다면 상대가 믿을 수 있는 ‘전략적 수’를 내놔야 한다. ‘김혁규 카드’는 전략적 수도 믿을 수 있는 공약도 아니다.

노 대통령이 사용해야 할 전략적 수는 ‘김혁규 총리 카드’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다. 그래야 상생의 정치문화를 기대할 수가 있다. 그것이 취임연설에서 밝힌 국정운영 지표에도 어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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