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무너뜨린 ‘국가의 품격’
성숙한 국민 의식이 다시 일으켜
미국 ‘反戰운동’에서도 빛난 촛불

대한민국 ‘풍전등화’ 상황 불구
분노한 民心 외면 모습 감춘 朴
이제라도 ‘고뇌의 결단’ 내려야

대통령이 무너뜨린 국격(國格)을 ‘촛불집회’가 일으켜 세우고 있다.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으로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을 조롱하던 외신(外信)도,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촛불집회’가 이어지자 아낌없는 찬사와 함께 경탄의 시선으로 바뀌었다.

지난 26일 전국에서 200만명이 참가한 촛불집회와 관련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고 보도했다. 중국 신화통신마저 “한국 국민이 평화로운 축제 모습으로 집회의 새 장(章)을 열었다”고 전했다.

우리 스스로도 ‘촛불’에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을 이겨낼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 그야말로 위대한 ‘촛불의 힘’이었다.

비폭력 평화시위의 대명사인 ‘촛불집회’의 역사는 꽤 오래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60년대 말 미국의 반전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촛불이다. 1969년 11월 15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50만명이 집결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시위였다.

이날 집회는 당대의 유명 포크 뮤지션들이 앞장섰다. 이들은 군중과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바로 존 레논의 ‘기브 피스 어 챈스(Give peace a chance)’였다. “우리에게 평화의 기회를 달라”는 이 노래는 당시 ‘반전(反戰)의 애국가’로 불리었다. 사람들은 ‘V’자 모양의 손가락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촛불을 든 채 노래를 부르며 밤거리를 행진했다. 마지막까지 평화를 유지했음은 물론이다.

이후에도 반전운동은 계속됐으며, 닉슨 정부는 마침내 1973년 베트남전을 끝냈다. 그리고 이듬해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탄핵 위기에 처했다가 결국 사임(辭任)한다.

우리의 촛불집회에도 깨어있는 많은 음악인들이 참여했다. 영원한 ‘어린왕자’ 가수 이승환은 그 대표격이다. 그는 지난 12일의 집회에서 ‘물어 본다’를 불렀다. “부조리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이에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촛불집회가 단순한 시위로 끝나지 않고 촛불문화제 혹은 축제로 승화되는 것도, 이런 용기 있는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지 모른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주위를 밝게 비춰준다. 약한 바람에 꺼지면서도 여럿이 모이면 온 세상을 채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새벽을 기다리는 불꽃이 바로 촛불이다.

‘박근혜 순장조(殉葬組)’로 통하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춘천)은 “촛불은 바람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촛불이 꺼지기는커녕 횃불과 들불이 되어 훨훨 타오르고 있다.

촛불민심은 박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下野)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특히 국정이 마비되고 경제가 꽁꽁 얼어붙는 등 나라 전체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에 놓였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모습을 감춘 채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특검과 국정조사, 탄핵 등이 이번 주 동시에 추진될 예정이어서 더 이상의 선택 여지도 없다. 박 대통령과 친박 세력들이 ‘탄핵 부결’이라는 요행수를 내심 바라고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만에 하나 국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의 후폭풍(後暴風)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동안 평화스럽게 진행되던 촛불집회도 그 양상이 180도 달라질 게 뻔하다.

닉슨이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 및 한국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 전개 과정 등이 너무 닮았다. 닉슨 대통령이 국회 탄핵 대신 자진 사퇴를 선택한 이면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설득한 당 지도부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기에 닉슨은 대통령 퇴임 이후 최소한의 명예나마 지킬 수 있었다.

아첨꾼과 간신배만 있을 뿐 충언(忠言)을 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의 비극이자, 이 나라 국민들의 비극이다. 그것은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일찍이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고 했다. ‘죽자고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이다.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내린 결단이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고뇌의 결단(決斷)’을 내려야 한다. 그것만이 국가 최고지도자를 지낸 스스로의 마지막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고, 역사에도 죄를 짓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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